"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늦었나니!"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늦었나니!"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0.14 09:42
  • 호수 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리면 늦었나니!"
수천 평, 수만 평 되는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불과 몇백 평에 불과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농사는 참 힘이 든다. 어차피 큰돈을 벌어 보겠다고 하는 농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시작하면 힘이 들게 마련이다. 되도록 짓기 쉬운 작목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그게 막상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큰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몇 년 전부터 어깨와 팔꿈치가 아파 와 설렁설렁 요령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덜컥 고추농사를 짓게 되었다. 농사 중 가장 어렵다는 고추농사를! 
봄이 되었다. 밭을 마냥 놀릴 수만은 없어 일단 로터리로 밭을 갈고, 비닐 멀칭을 끝냈다. 때마침 식구들이 들이 닥쳤다. 장모님이 고추 모종 값을 대주시는 바람에 고추모를 덜컥 무려 1천모나 사고 말았다. 온가족이 달려들어 고추모를 심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도움은 거기까지!
고추 지지대를 박고, 지지 줄을 묶어주고, 땡볕에 고추를 따고, 건조하는 일은 올곧이 혼자서 해야 하는 일로 남았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놀러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 고추 따기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꼬드겨서 힘을 덜었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어 오로지 뜨거운 태양과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기 놈들을 벗 삼아 고추를 땄다. 
프로 농사꾼들은 고추 한 그루에서 한 근을 딴다던데 '무제초제, 무농약. 무화학비료'라는 고집스런 3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나는 한 근은커녕 반 근도 따기 어렵다. 그래도 세상에 없는 청정 고추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땄다. 다행히 잡초들과 함께 키우는 나의 태평 청정농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지인들이 값을 조금 높게 책정해도 구매해주는 덕분에 재료비와 최소한의 인건비는 거두었으니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나름 열심히 고추농사를 지었으니 자! 이제 떠나자! 
젊은 시절, 여행을 떠나면 왠지 가슴이 떨렸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새롭게 겪게 될 경험들, 새로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그리며 가슴은 뛰고 설렘으로 가득했었다. 지금은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분명 젊은 시절의 그런 뜨거운 열정은 조금 식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가슴에 온기 정도는 남아 있고, 다리가 떨리지는 않으니 떠나자.
논산 벌곡면에 나눔터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은 매우 특별한 곳이다. 그곳 주인장인 김갑수 촌장은 그곳을 찾는 이를 결코 내치지 않는다. 원하면 누구에게나 잠자리와 세끼 식사를 제공한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인생,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베풀 수 있다면 그것은 큰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마침 그곳에서 디카시(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단 짧은 시) 전시회와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코로나로 다들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사람들은 만남 그 자체에 감사하고 즐거워했다. 주인장의 편안함과 맛난 음식 그리고 아름다운 주변 자연환경에 빠져 편안한 이틀 밤을 보냈다.
다음 여행지는 국립부여박물관. 그곳 공연장에서는 10월 2일, 노인의 날( 나는 노인의 날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을 맞아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트로트 콘서트가 열렸다. '내 나이가 어때서'의 가수 '오승근'을 비롯한 공연자들은 1년 반 만에 열리는 대면 공연에 감격했다.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응답했다. 역시 공연은 대면으로 해야 실감이 난다. 
박물관 최초로 트로트 콘서트를 기획한 윤형원 박물관장과 지역 예술가들과의 저녁 모임에 참석한 것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추억하게 된 것은 이번 여행의 보너스였다. 사람들을 만나면 잊혀졌던 과거의 추억 속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피어나기도 한다. 특히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꿈을 꾸게 만든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행의 즐거움 중 빼어놓을 수 없는 조미료 중의 하나이다. 
수확의 계절이다. 땀 흘려 일하는 이유는 분명 배부르게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삶의 즐거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 위함일 것이다. 
코로나로 오랜 기간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백신 접종률도 목표에 달해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자!" "가슴이 떨릴 때 떠나자! 다리가 떨리면 늦었나니!"

칼럼니스트 이 만 동
조자용민문화연구회 대표, 도화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