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보은읍 강산리, 불의에 항거했던 인정 많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21)보은읍 강산리, 불의에 항거했던 인정 많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 김범호
  • 승인 2021.10.07 10:54
  • 호수 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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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보은읍내 북쪽 홍두봉아래 작은 골짜기에 강산 절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옛 부터 충효사상이 깊어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당연시 했던 마을로 유명했다. 
강산(리)절은 동학군들이 보은 집회를 할 당시 접주 한정복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을 부르짖으며 사회개혁에 앞장섰던 마을이다. 또한 1907년 정미의거 때 왜 헌병의 폭압에 맞서 투쟁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왜 헌병을 죽였다고 마을 사람들을 마구 잡이로 살육하는 엄청난 일이 있었다. 이후 강산(리)절은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많았던 마을이다. 광해군 시절 양녕대군의 5세손 공능참봉 이원창이 임진왜란당시 이여송을 도와 큰 공을 세웠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내려와 터를 잡았다는 반룡농주(盤龍弄珠)의 마을, 강산(리)절을 소개한다.
강산(리)절은 배산임수가 잘 형성된 명당마을로 마을 뒤로는 태봉산 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앞으로는 보청천이 유유히 흘러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어르신들을 만나러 강산(리)절 입구에 들어서니, 마을 앞 대추밭은 울긋불긋 풍년을 기약하듯 탐스럽게 익어간다.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문은 굳게 잠겨있다. 농업군인 보은은 요즘 가을걷이에 바쁜 계절이니 그러려니 하고 돌아서려는데,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김규한(75)님이 다가온다. "어디서 오셨는데, 회관을 찾아 오셨나요?"하며 이방인의 방문을 물어 본다. "보은사람들 신문에 마을소개 글을 쓰고 있는 양화용입니다. 강산리 마을 내력을 듣고자 어르신들을 뵈려고 찾아 왔는데 보이질 않네요." 하니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작은 마을 여러개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지만 서로 상부상조가 당연시 되는 다동(多同)이 마을
마을소개를 부탁하며 회관 옆 정자마루에 앉아 수첩을 꺼내니, 강산리는 작은 동네가 여러 개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마을이 이루어진 것이지요?"하고 필자가 다그치듯 물으니, 성바골(성밖골)옆 산성아래 노루목고개(구르목 고개라고도 한다)와 개조골, 속뜸, 도독골, 상나무골, 진골 등이 모여서 지금의 강산리가 되었답니다. "속뜸은 무슨 뜻일까요?"하고 필자가 궁금한 듯 물어보니,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예전에 그곳은 산 끝자락이었는데, 소나무가 많이 있었답니다. 아마도 소나무가 많아 속뜸이라고 했던 것 같네요. 지금 회관주위랍니다. 지금도 큰 소나무가 있던데 예전엔 많이 있었나 봅니다. "예! 어르신들 말씀에 의하면 많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도독골은 예전에 높은 벼슬을 하던 분이 살고 있던 마을이라고 그리 불렀다고 하는 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래요?" 아마도 신라시대에 보은을 지키던 어느 장수가 이곳에서 살았나 보네요. 왜냐하면 도독은 통일신라시대 9주를 담당하던 장수로 고려 공민왕 때 까지도 한반도에 있었던 관직이거든요. 하고 아는 체를 하니 흥미롭게 들으시면서 마을이야기를 이어 가신다. 우리 마을은 예전부터 여러 집이 한날 제사를 지내는 일이 있었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마을 유래비가 있으니 그것을 참고 하시면 좋겠네요. 유래비가 있나요? 하고 물으니, "그럼요. 저기 마을 회관 옆에 우리 마을 내력에 대해 잘 기록되어 있으니 그걸 보시면 되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귀농귀촌하는 분들이 선호하는 마을 지금도 부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김규환님과 헤어지고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주택지를 찾아가는데, 큰 느티나무아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아주머니 두 분이 마을을 배회하는 필자가 이상했는지 "어디서 오셨나요?"하며 흥미롭게 필자를 불러 세운다."아~네! 마을 소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강산리 소개 글을 쓰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 좀 잠시 낼 수 있을까요?"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아~유 죄송해요. 우리는 귀촌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소개할 말이 없네요." "이 마을에 2년을 사셨다고 하셨는데, 사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시던 가요? 소감 좀 한마디 해주시지요?" "우리 마을은 조용하고 살기 좋은 동네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좋은 분들인 것 같아 편하고 좋아요. 터를 잘 잡은 것 같아요." "그렇군요. 대추의 고장 보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잘하셨네요." 보은 토박이로써 보은에 정착해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주머니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작은 화물차 한대가 급히 필자 앞에 정차를 한다.
김광소 (70)님께서 어디를 갔다 오는지 급히 차에서 내려 "무슨 일 때문에 우리 마을을 오셨나요."하며 관심을 보여주신다. "마을 소개 글을 쓰려고 왔습니다." 하고 방문 목적을 말하니 묻기도 전에 "우리 마을은 개조골, 음달뜸, 금사골, 속뜸, 구삿골, 말랑 등이 있고, 한씨종친 산이 있는 성바골 등으로 이루어 졌답니다. 지금은 강산리로 통합 되었지만 옛날엔 여러 마을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어르신들이 거의 돌아가셔서 마을 유래를 많이 알 수가 없는데, 제가 어렸을 때 어르신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애국투사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구요."하며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해주신다. 아마도 동학접주 한정복과 정미년 일경을 죽인 마을항일투사들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다. 
마을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마을 유래를 알고 있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맥이 끊기는 것이라는 거다. 크고 작은 마을 유래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정신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다. 김광소님과 헤어지고 마을 유래비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유래를 읽어보니 마을 사람들이 필자에게 전해주었던 내용이 거의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민족정기가 맥맥이 흐르는 자랑스런 마을, 민족수난기에 감연히 일어나 정의를 이룩한 전통이 있는 마을로 한날 제사를 지내는 마을 
마을회관 옆 고즈넉이 세워져 있는 마을 유래비를 살펴보니 국토의 척추 한남금북정맥이 읍태(邑台)를 향하여 힘차게 달리며 정기를 받아 솟아오른 홍두봉이 주산(主山)이다. 
1686년 속종12년 영의정 한상경의 후예가 살고부터 마을을 이루었다. 인심이 후덕하여 대문 없는 마을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보은농업을 선도하는 농업기술센터가 자리하고 있어 복지농촌의 미래가 약속된 희망찬 마을이고, 특히 동학접주 한정복의 지휘로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에 앞장섰던 개혁정신이 살아 숨 쉬고 정미의거에 왜 헌병을 마을 앞들에서 무찔렀는데, 그 여파로 일제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어 한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은 마을이며, 민족정기가 맥맥이 흐르는 자랑스런 마을이고, 민족수난기에 감연히 일어나 정의를 이룩한 전통이 있는 마을이라고 적혀있다. 
대추 익어가는 가을저녁, 충효의 마을 강산리는 그들의 가슴속에 맥맥이 이어왔던 애국애민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것을 느낀 감동의 시간이었다. 황금물결 넘실대는 동안이 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산리 마을 유래비.
전원주택단지. 귀농인들이 많이 입주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전경
농업기술교육의 산실 보은군농업기술센터도 보은읍 강산리에 있다.
보은군농기계임대사업소 전경
농협경제사업장 전경
강산리 마을회관
느티나무 정자.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화합의 공간이다.
느티나무 정자.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화합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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