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보은의 노래 '우리 속리산'
(25) 보은의 노래 '우리 속리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0.07 09:27
  • 호수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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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서도 잊혀진 노래 '우리 속리산'

지방마다 그 지방의 명승을 가지고 만든 노래들이 있다. 이런 노래들은 그 지방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불리어져 지역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 그 지방을 널리 알리고는 하였다. 조용필의'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이미자의'유달산아 말해 다오'등은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고, 보은에도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속리산을 주제로 하여 만든 노래'우리 속리산'이 있어 보은 사람들이 많이 부르고는 하였다. 이번 주 우리 동네 문화유산에서는 노래'우리 속리산'을 주제로 하였다.
1960년대에 보은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막대를 던져 짚고 찾아드는 곳, 속리산 법주사야 미륵의 도장'이라고 한번쯤은 흥얼거려 보았을 것이다. 나 자신도 중학교에서 이 노래를 배워 박자는 맞지 않겠지만, 전국의 근무지로 이동하면서 환영식이 있으면 언제나 속리산 자랑과'우리 속리산'노래를 불러 보은의 속리산 촌놈임을 자랑스럽게 내 세우고는 하였다. 그러나 은퇴 후 찾아온 내 고향 보은에는'우리 속리산'노래가 이미 사라져 흔적이 없고, 이런 노래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보은이 지금은 비록, 중부 내륙의 산골짜기에 위치한 소멸위험지역이지만, 아주 옛날에는 신라 초기시대부터 중요한 군사거점 지역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지역이었다. '삼국사기'기록에 의하면 이미 서기 64년(신라 탈해이사금 8년)에 와산(蛙山)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하였고, 서기 470년에는 보은 땅에 삼년산성을 쌓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속리산에는 서기 553년에 의신조사가 법주사를 세워 신라 변방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전국의 명망 높은 스님들이 모여 들었고,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詩)와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한국산악회 회장을 지내신 시조시인이며, 사학자이신 강산유인(江山遊人) 이은상님이 보은을 자주 찾아와 아름다운 속리산에 감탄하면서, 법주사, 천왕봉, 문장대, 입석대, 관음골, 보현재, 은폭동을 노래하고, 한강, 낙동강, 금강의 근원지가 속리산임을 알려주는 주옥같은 노랫말을 지어,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장을 지내신 김동진 님에게 곡을 맡겨'우리 속리산'이라는 경쾌하고도 정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보은 사람들은 물론,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까지 널리 불리어졌다. 이보다 더 보은의 속리산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노래가 있을까 ? 이렇게도 아름다운 보은의 노래가 이제는 보은사람들의 입에서는 물론, 수많은 TV 방송채널과 인터넷에서 조차 흔적을 지웠다. 어렵게 찾아낸'우리 속리산'악보를 보면서, 요즈음 트로트의 범람으로 건전가요가 서 있을 자리조차 없지만, 박달재를 올라서면'울고 넘는 박달재'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듯, 오리 숲을 들어서면 잔잔하면서도 경쾌한'우리 속리산'노래가 울려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고, 속리산의 의미를 알려 주고, 또 찾고 싶은 속리산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 본다. 보은 사람들만이라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속리산을 주제로 하여 만든 노래 '우리 속리산'
속리산을 주제로 하여 만든 노래 '우리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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