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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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9.30 09:15
  • 호수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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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한가위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다녀온 고향길은 고즈넉하고 포근했다. 주변에 펼쳐진 풍광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디를 다니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몇 번을 생각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사소하고 가벼운 것들의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덤덤함과 제 자리 찾기가 소중하고 고마웠다. 무심한 듯 반겨주는 그 모습이 더 애틋하고 정겹다. 
이처럼 바라보이는 많은 것 들은 그대로 인 듯 한데 우리의 삶은 잠시도 멈춤이 없다. 기쁘고 좋은 날도 지나 보면 순간이고, 힘들고 어려운 날들도 속절없이 지나간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간다. 오늘이 전부인 양 발버둥 쳐도 어김없이 내일은 찾아온다. 그 내일은 분명 오늘과 다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생동하는 삶의 면면들이 모여 만들어낸 인생극장의 무대이다. 그 무대의 주인공은 물론 우리 모두다.  
무대 위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같은 듯 다른 삶들이 펼쳐진다.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못사는 사람이 있다. 아픈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다. 좋은 일이 생겨 절로 웃음이 나오는 사람이 있고, 안 좋은 일로 얼굴이 굳어진 사람도 있다. 뜻하지 않은 이별에 마음 사무치는 사람이 있고, 꿈같은 만남에 하루하루가 즐거운 사람이 있다. 원하는 것을 이룬 사람이 있고, 뭐를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있고, 하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엄두도 못 내는 사람이 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음에 애달파 하는 사람이 있고 늘 함께 있으면서도 남과 다름없는 사람도 있다. 화려한 영광의 자리에 올라서 있는 사람도 있고, 늘 제자리인 듯 멈춰서 있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다사다난한 삶과 마주하며 우리의 일상도 요동치고 흔들린다. 분명한 건 누구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인의 경우가 자신의 처지가 될 수 있고 자신의 현실이 또 다른 타인의 일이 될 수 있다. 삶은 변화무쌍하면서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모습을 닮았고, 인생은 드러나지 않는 넓음과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와 같다. 그러기에 어느 한 사람의 삶과 인생도 만만치 않다. 나이를 떠나, 성별을 떠나, 신분을 떠나,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두의 삶은 저마다의 무게로 흔들리고 부딪치며 나아간다. 떠밀려 가는 삶도 있고 흘러가는 삶도 있고 거침없이 내 달리는 삶도 있다. 답이 있되 답이 없는 날들의 연속일지라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날들을 거뜬히 살아 내게 하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 아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할 이유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따뜻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메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가만히 내미는 손이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 된다. 아무도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난 너만 믿는다며 등을 두들겨 주는 단단한 믿음이면 된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원망할 때 조용히 다가와 넋두리 같은 하소연을 들어 주는 넉넉함이면 된다. 캄캄하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가만히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 주는 따뜻한 마음이면 된다. 때론 커피 한잔의 시간과 무심코 흘러나오는 음악이 마음을 다독여 준다. 어루만지듯 스쳐 가는 바람도 위로가 된다.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소소하게 위로받고 싶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싶다. 그것이 동시대를 함께 사는 이유이고 같이 가는 사명이다. 누군가에게 우리 모두는 위로를 건네야 한다. 바다와 같고 우주와 같은 우리의 삶을 견디고 헤쳐나갈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판과 주렁주렁 매달려 붉게 익어가는 대추가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견뎌 온 농부들에겐 위로가 될 것이다. 고개 들어 바라보고, 손을 내밀어 잡으려는 그곳에 자신을 위로해 줄 누군가와 무엇이 놓여 있다는 믿음은 모두를 일으켜 세우는 마법이다. 위로는 상처 주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괜찮다고, 최악은 아니라고,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결국엔 잘 될 거라고, 그리고 애썼다고, 오늘도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말해 주자. 

위로가 되는 소중한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

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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