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다
길을 묻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8.26 10:13
  • 호수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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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길을 걷는다.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은 늘 새롭고 설레는 출발이다. 가고자 하는 그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과 각각의 사물과 펼쳐진 배경이 매 순간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날지, 어떤 일이 눈앞에 일어날지, 날마다 보는 풍경도 어제, 오늘이 다르다. 어느 날은 좀 더 멀리 갈 수도 있다. 좀 더 평탄한 길을 갈 수도 있고, 구불구불 굴곡진 길을 넘어갈 수도 있다. 언제 가더라도 똑같은 길은 없다. 누가 가더라도 길은 그때마다 다르다.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비탈길, 오솔길, 지름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걸으며 돌고 돌아 나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이었다. 그 길들과 함께 지금의 시간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의 길을 통해서 주어진 시간을 갈무리할 것이다.
옛적 선조들의 이야기와 흔적이 남아있는 길이 역사 속에 되살아나 지역의 걷기 명소가 된 길도 많다. 가까이 만 봐도 보은의 세조길, 괴산의 산막이옛길, 옥천의 향수 100리 길이 그렇다. 길은 무한하다. 그 길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무수한 사연과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할수록 그 길의 가치는 높아진다. 전국적으로 열풍이 불었던 올레길, 둘레길도 길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매일같이 걷고 뛰고 뒹굴며 지나다녔던 길이 있었다. 추억의 한 페이지에 오롯이 남아있는 그 길이 1597년, 이순신 장군이 피눈물을 흘리며 걸었던 백의종군의 길이였다는 사실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선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모든 것을 다 바쳤으나 사악한 간신들과 어리석은 혼군의 모함과 시기에 억울한 옥살이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일개 병졸이 되어 군영으로 돌아가는 참담한 길이였다는 역사 앞에 그때부터 그 길은 4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한 인간의 사무치는 아픔을 되새겨 보는 길이 되었다.
1944년 일제의 침략야욕이 극에 달한 시점에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오직 독립군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6천리(2,400km) 대장정의 길 끝에 마침내 김구 선생님을 만나 광복군에 편입되어 조국독립과 독재와 부패에 맞춰 평생을 싸운 장준하 선생의 길은 위대한 여정이었다. 누군가는 일본군 장교가 되고자 대구에서 만주로 길을 떠나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혈서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
광복 76주년을 맞아 머나먼 이국땅 카자흐스탄을 떠돌던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31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던 그 참담하고 아득한 길을 돌고 돌아 78년 만에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어느 길이든 무수히 많은 갈림길이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갈래 길이 있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갈 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길! 그 길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의 몫이며, 역사의 길목에서 평가되어 진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늘 쟁쟁하게 울리는 이유다.
요즘도 곳곳에 그 지역과 연고가 있거나 연관성이 발견되면 특별한 업적을 이룬 유명인의 이름을 붙인 000로, 000길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길의 가치와 상징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오늘도 길을 묻는다. 물리적으로 움직이거나 단순한 공간 이동의 개념이 아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 앞에 어느 길로 갈 것인지 묻고 또 묻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길 위에 내 던져 졌다. 무작정 따라가는 길이 있고, 사회적 통념을 무너뜨리거나 깨부수며 개척해 나가는 길이 있다. 아이들도, 청소년도, 젊은이들도 자신의 길을 찾아 방황하고 흔들리며 길을 간다. 문제는 관념에 찌든 어른들과 모순되고 불합리하면서도 견고한 기존 사회구조의 틀이 그 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너의 길을 가라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하고 싶은 꿈을 맘껏 발산하며 멋지게 자신의 길을 가라고 말해 주고 싶다. 길은 정해지지 않았다. 길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마음속의 길과 눈 앞에 펼쳐진 길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길을 오롯이 열어 갈 때, 한 사람의 생은 값진 발걸음으로 굳건하게 새겨질 것이다. 두 갈래 길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면 된다.

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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