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보은읍 장신2리, 국회의원부터 도의원, 면장 등 크고 작은 사회단체장을 배출한 마을
(16)보은읍 장신2리, 국회의원부터 도의원, 면장 등 크고 작은 사회단체장을 배출한 마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8.19 11:25
  • 호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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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서쪽 청소산(淸昭山) 아래 7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지만 큰 마을이 있다.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장신2리 마을이다. 장신2리는 몇 년 전 아파트 단지가 생겨 현재분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가을향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입구에 들어서니 평소 보지 못했던 건물이 하나 서있다. 안내판을 보니 노인정이란 글씨가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코로나19 때문인지 아무도 없고 주인 없는 빈 신발만 회관을 지키고 있다. 회관을 나와 동네로 들어서니 인심 후덕하게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누구를 찾아 오셨나요?" 하며 필자의 방문을 확인한다. 시골마을을 가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반 호기심 반의 표정으로  맞이하는 것이 통과의례이다. "예, 마을회관을 찾는데요." 하고 여쭈어 보니 조금 전 들렀던 건물을 가리키며 회관 겸 노인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신다. "무슨 일로 우리 마을을 찾아오셨나요?" 하며 재차 물어 보신다. "아~예! 다름이 아니라 마을소개 글을 쓰고 있는 양화용입니다." 하며 인사를 건네니 "지난번에 죽전 샘에 대해 쓰신 분이군요?" 하며 "우리 마을은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데, 이장님에게 여쭈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신다.
박장호 이장님과는 오전에 통화를 했고 오늘은 복숭아 수확하는 날이라 시간 내기가 어려우니 노인회장님을 찾아가보라 하셨기 때문에 지금 노인회장님을 찾아가는 중이라 하니 노인 회장님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시다.

#용이 살았다는 비룡소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 운다.
"아주머니 혹시 이 마을에서 오래 사셨나요?" 하고 물어 보니 "시집오고부터 지금까지 줄 곳 40년째 사는 중"이라고 하시면서 "옛날에는 청소산 아래 큰 용이 살았다고 해요. 제가 시집올 때만 해도 이 마을에 30여 가구가 살았는데, 어른들께서 말씀하시길 마을 앞 개울가에 용이 살고 있어 그곳을 함부로 가면 큰 일 난다고 말씀들을 하셔서 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마을 이름이 비룡소랍니다." "용이 살았다는 자리가 어디쯤 될까요?" 하고 필자가 여쭈어 보니 적송 가득한 앞산을 가리키며, 항건천이 휘돌아가는 산 정자 아래라고 하신다. 그곳의 깊이를 아는 이는 없다고 하시면서 옛 어른들 말씀이 명주실 세 타래를 넣어도 끝이 닫지 않을 정도로 깊은 소가 있어 마을사람들은 그곳을 신성시 했다고 하신다. 이름을 끝까지 밝히길 거부하신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박계흠(72) 노인회장을 만나기 위해 옛 마을회관을 찾아가는데 길옆 아름다운 담장이 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삼문이 있고 초가집과 기와, 와당의 조화가 아름다운 담장을 가진 마을 
기와와 와당으로 무늬를 넣은 아름다운 담장을 따라가니 요즘 보기 드문 웅장한 삼문이 보인다.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가 활짝 열려있는 커다란 삼문을 들어가니 예쁜 초가집과 잘 가꾸어진 정원이 눈에 들어오고, 깔끔하게 정리된 잔디마당이 초가집과 어우러져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집주인은 누굴까 어떤 분이 이렇게 아름다운 초가집을 소유하고 있을까? 잠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서있는데 저 멀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누굴 찾아오셨나요?" 하면서 손짓하시는 어르신이 보인다.
느티나무는 수백년 묵은 고목이 고사해 새로 심은 것인데 수세가 왕성해 주민들에게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아~예! 노인회장님을 만나뵈려고 왔는데요. 집이 너무 아름다워 구경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고 방문 목적을 말씀드리니, "아 그래요. 내가 이집에 사는 사람이고 노인정 일을 하고 있지요."하신다.
"그럼 박계흠 노인회장님이신가요?" "그래요 내가 노인회장이요." "예! 저는 보은사람들 신문에 마을 소개 글을 쓰고 있는 양화용입니다." 하고 소개와 방문목적을 말씀드리니, "대뜸 저 담장 어떻게 보시나요?" 하며 담장을 가리킨다.
"예 저도 담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고 담장을 쌓으셨나요?" 하고 반문하니 "저 담장에 들어간 기와는 사실 옛날 집을 철거할 당시 기와가 많이 나왔는데 처분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기와로 담장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금의 담장을 만든 것이랍니다. 어때요 보기가 괜찮나요?" 하신다. "예! 무척 아름답고 저런 담장은 아마 보기 힘들 것 같아요. 헌 기와지만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여 아름다운 담장으로 탄생시킨 것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요즘 세대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아요." 진실로 필자가 본 담장 중 가장 아름다운 담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마을은 작지만 큰 마을
"양 선생 이리와 앉아요. 작지만 큰 마을이 우리 마을입니다." "예? 작지만 큰 마을이라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하고 반문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노인회장을 바라보며 정자나무 아래 벤치에 앉으니 "우리 마을은 70여호 정도로 읍내 치고는 작은 마을이지만 국회의원을 비롯해 도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와 고위공무원들과, 교육장 등 공직자와 크고 작은 사회단체장들을 많이 배출한 동네랍니다. 특히 우리 마을은 남향이고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잘 구성된 마을이지요. 그러다 보니 인구는 작지만 출세한분들이 많아 작지만 큰 마을이라고 소개 했답니다. 그리고 마을입구에 설치된 유래비를 보시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노인회장의 마을자랑 속에 장신2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는 게 느껴졌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을입구에 서 있는 유래비를 찾았다. 마을자랑비에는 장신2리의 역사와 현재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다음은 마을자랑비 내용이다.
'우리 마을 비룡소(飛龍沼)는 항건천이 동류하다 활처럼 굽이쳐 청소산 아래, 깊고 큰 웅덩이를 만들었는데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간 늪이라 하여 비룡소라 부르고 운천리, 장신리, 신촌리, 피촌리를 통합해 장신리라 하였다. 처음 마을이 형성될 때는 김해 김씨, 인천 이씨, 밀양 박씨, 개성 방씨, 파평 윤씨 등 5개 성씨가 살았는데, 이후 많은 성씨들이 들어와 지금에 이르렀다. 비룡소 고개 마루에는 1937년 보은 유림들이 세운 박영권 효행비각이 있어 후대들에게 충효의 중요성을 알려주고자 했고, 청소산 절벽위에는 박영권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고 박기종씨가 1967년 성미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선인들의 미풍양속을 계승하는 교훈의 장소도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 길지 중 길지에 자리 잡은 마을
정치,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마을
길지중의 길지에 조성된 비룡소는 예로부터 조상들의 음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마을 출신들이 각 분야에서 고향의 명예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을 지낸 박기종씨를 비롯한 도의원, 행정가, 교육계는 물론 문화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했고, 지금도 수많은 인재들이 전국각지에서 고향의 명예를 드높이고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한다.
국내 굴지의 출판그룹인 민음사 고 박맹호 회장은 수년간 민음사에서 출판한 각종 도서를 학교 도서관 및 군립 도서관에 기증하고 지난 2016년에는 청소산 약 2만2천400여㎡를 보은군에 희사해 현재의 장신공원을 조성하게 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부문화에도 앞장서고 있다고 하신다. 사실 필자가 비룡소를 마지막으로 방문할 때가 4년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마을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넓고 깨끗한 마을길, 아름답게 새로 단장한 집들, 예전의 비룡소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노인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청소산을 군에 희사해 공원을 조성하고 마을길도 넓혔는데 그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이 적극 협조하는 바람에 원활히 진행할 수가 있었다고 하신다.
"우리 마을은 옛 부터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인심 좋은 마을이랍니다. 그것은 선대들로부터 보고 배운 충효의 정신이 우리마을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노인회장님의 마을소개 말씀을 듣고 청소산마루에 자리 잡고 있는 성미정(成美亭)을 찾아가는데 초가을 저녁노을이 짙게 드리워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소리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어느 사이 산마루에 다다른다. 몇 가지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청소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비룡소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기종씨의 생가 모습이다. 삼문에 들어서면 초가집이 있고 기와로 담장을 쌓은 고즈넉한 멋을 자랑하는 가옥으로 충청북도 민속문화재이다.
장신2리 느티나무는 고목이 고사해 새로 심은 것으로 수세가 왕성해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청소산 절벽위에는 박영권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고 박기종씨가 1967년 성미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선인들의 미풍양속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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