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여름
잔인한 여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8.19 10:55
  • 호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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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무더운 여름이었다. 어떤 기록을 떠나 내 개인적으로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겪는 무더위였다.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쓴 채 무더위를 견뎌야하는 잔인한 여름이었다. 그 보다 더 한건 내가 18년 4개월을 키운 반려견이 내 곁을 떠난 잔인한 여름이었다. 무더위 때문인지 주위의 연로한 어르신 몇 분도 부음이 들려왔다. 건강한 사람도 헉헉대는데 연로한 어르신들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밖에 있는 짐승들은 그 햇볕과 무더위를 견디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주말에 아침 일찍 고추를 따러갔다. 먹을 것 300포기 정도를 심었는데, 따고 씻고 건조기에 넣었더니 햇볕은 뜨겁고 입은 옷은 땀에 젖어 물이 흘러내렸다. 농사를 짓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생각하니 농사를 짓는 분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내 부모님도 이렇게 힘들게 일을 했구나 생각하니 울컥 가슴이 아려왔다. 농사지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에 공부까지 시키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추 따는 일과 같은 대부분의 농사가 무더운 여름에 하는 일이라 더욱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 퇴근을 했더니 반려견 은비가 숨을 쉬지 않았다.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던지 은비를 안고 엉엉 울었다.
처음 밥을 먹지 않아 병원에 입원 시키고 또 그렇게 세 번을 입원과 퇴원을 거듭했다. 자궁축농증 수술하고 4년, 그때부터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건강하게 지내곤 했다. 그런데 밥을 먹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심장도 간도 신장도 안 좋다고 했다. 약을 하루에도 몇 번을 먹이고 탈수증상이 있어서 하루에 몇 번 피하주사를 놓기도 했다.
죽기 며칠 전에는 뒷다리에 마비가 와서 물을 먹으러 가지도 못하고 경련을 일으키면 밤잠을 설치며 토닥여 주곤했다. 그러면 간신히 내 품에서 얕은 잠을 자기도 했다. 그래도 명이 다했는지 무더운 여름날, 은비는 떠났다. 좀 더 잘해줄 걸 하면서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자꾸만 보고 싶고 너무도 그립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잔인했던 여름이 조금씩 물러가나 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고 책을 본다. 은비가 아파서 간호하느라 여름내 책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무더위를 견딘 이 잔인한 여름.
사랑하는 내 반려견 은비를 데려간 잔인한 여름.
나는 잔인했던 이 여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가을이 오고 있다. 계절은 또 한 계절을 딛고 온다. 인문학 책을 읽으며 악몽과도 같은 시절을 견디고 있다. 어떤 어려움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 믿어보련다.

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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