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산대리 상수리나무
(18)산대리 상수리나무
  • 심우리 기자
  • 승인 2021.08.12 11:09
  • 호수 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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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집터'라는 뜻으로 산대라고 불리던 산대리의 신개울마을은 2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산대리의 신개울마을은 문화 류씨 집성촌이며 예로부터 학자, 효자, 효부가 많았다고 한다. 신개울마을의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덕분에 이름과 그 외의 민족의 교육및 문화를 지킬 수 있었으나 당시에는 극심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산대리 신개울마을의 입구에는 상수리 나무가 작은 고개에 서서 약 350년 동안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이 상수리 나무 역시 일제강점기 때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창씨개명을 강요당할 당시 이를 거부하던 주민들이 일본 순사들에게 붙잡히면 이 나무에 매달려져 폭행을 당하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1998년 신개울마을의 상수리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됐고, 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로 자리 잡았다. 작은 언덕위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한 상수리 나무를 직접 보니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개명을 거부하던 마을의 주민들이 고문을 당하면서도 지키던 지조가 나무에 그대로 서려진 듯 했다. 그래서인지 수고 30m에 3.2m에 달하는 작은 크기에도 다른 어떤 나무들보다도 크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말살정책을 거부하고 지독한 고문에도 끝내 민족의 문화와 이름을 지켜낸 신개울마을의 문화 류씨 주민들과 그들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상수리 나무. 이러한 조상님들의 정신을 담은 상수리 나무야말로 진정한 보은군의 보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개울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상수리 나무는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개명을 거부하던 주민들을 묶어두고 고문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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