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하여
이별에 대하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7.15 10:18
  • 호수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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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부쩍 이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내가 18년하고도 4개월을 키우고 있는 은비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 위태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배운 것은 없어도 열심히 농사만 짓던 사촌 오빠가 돌아가셨다. 오래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었는데,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와 농사짓고 삼남매 잘 키우고 걱정 없이 가정을 꾸리고 살았었다. 사고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술과 담배를 즐겨하더니 그예 폐암으로 1년여를 고생하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약국에서 7년여를 일하면서 돌보는 길고양이와의 이별 또한 마음이 아프다. 스스로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던 영리한 고양이 뚱이, 어느 날 우리가 마련해준 약국 뒤편에 조용히 죽어있었다. 자주 와서 보채던 시끄리도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미루, 뚜껑이, 또, 또, 어느 날 약을 먹었는지 한꺼번에 죽어버렸다.
얼마 전에는 우리가 아끼고 돌보던 고양이가 죽었다. 몇 달 전에 사고가 나서 머리와 턱이 깨지고 한쪽 눈을 크게 다쳐 병원까지 입원 시켜 살려 놓은 녀석이다. 사고 후로 실명을 했고 씹는 것 또한 불편해했다. 그러던 녀석이 약국 안이 답답했는지 문을 열면 밖에서 놀다 오곤 했다. 그 날도 출근해서 문을 열었더니 밖으로 나갔는데 뒤편 주차장에서 놀다가 그만 어느 차에 부딪혔나 보다. 저만치 나가 떨어져 자는 듯이 죽어있었다. 며칠 동안 마음이 아파 약국 문을 열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곤 한다.
지금은 오랫동안 아이들 떠난 빈자리를 막내인양 채워주던 은비와의 이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책을 보는 내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나의 산책길에 동무해주던, 잠자는 내 옆에 살며시 다가와 함께 잠을 자던 은비. 평균 수명 이상을 살고 있는데도 나는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어 병원을 오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약을 먹이고 수액을 맞춘다. 내가 아는 유명한 작가 선생님과 통화를 하는데,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가 죽었을 때 더 많이 울었다고 해서 같이 웃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 뜻 들었다.
애견이나 애묘를 길러보지 못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애뜻한 감정이 있다. 애견이나 애묘가 죽으면 여자는 자식을 잃은 만큼의 슬픔이, 남자는 친한 친구를 잃은 만큼의 큰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내게 다가오는 은비와의 이별이 두렵다.
장자는 아내가 죽고 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그 슬픔을 감추고 그러할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과의 이별도 슬프지만, 나에게 투정한번 부리지 않던, 나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던, 잔소리도 하지 않던, 은비와의 이별은 그에 못지않을 것이리라.
사람과 사람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픈 말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싸우기도 하고, 그러고 살지만 애견이 애묘가 사람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는가. 오히려 사람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면 몰라도.
내가 아무리 보살펴도 은비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이별을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슬프다.
어떤 이별도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으리라.

칼럼니스트 김철순(시인, 관기약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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