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마로면 갈평리 마을 빨래터
(16)마로면 갈평리 마을 빨래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7.15 10:12
  • 호수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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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 자락이 만들어 놓은 마을 빨래터
구병산 자락이 만들어 놓은 마로면 갈평2리 새터의 마을 빨리터의 모습이다.
구병산 자락에 만들어 놓은 마로면 갈평2리 새터의 마을 빨리터의 모습이다.

지금은 빨래 감을 세탁기에 넣고 스위치만 조절해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빨고, 헹구고, 짜고, 유연제로 부드럽게 만들어 건조기로 옮겨 바로 입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들이 이 모습을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실까 ? 세상의 소식을 접하고, 속으로 곪아터진 한(恨)을 빨래방망이에 실어 날려 버리고, 다른 어머니들과 서로 위로하고, 정을 쌓아가던 빨래터의 고마움과 추억은 잠시 잊어버리시고, 신기하고, 놀라서 어안이 벙벙하시지 않으실까? 옛날 동지섣달 추운 날씨에 얼음을 깨고 손빨래하던 모습이 떠올라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주 '우리 동네 문화유산'에서는 어머니들의 만남의 장소요, 또 하나의 공동체였던 마을 빨래터를 주제로 하고, 구병산 자락이 만들어 놓은 마로면 갈평2리 새터의 마을 빨래터를 소개한다.
갈평2리는 본래 보은군 왕래면 지역으로 김해 김씨 집성촌이었다. 칡이 많다고'갈벌'또는'갈평'이라고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대리를 병합해 갈평리라 하고 마로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1980년대 새마을사업의 홍보마을로 지정되어 유명해진 갈평리는 아홉 폭 병풍을 펼쳐 놓은 모습의 구병산(九屛山) 자락 아래 넓은 벌판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 갈평2리에 해당하는 새 터는 구병산 자락에서 흘러내려온 물길이 마을을 통과하면서 곳곳에 도랑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도랑을 모두 복개 포장해 골목길로 사용되고 있어 이방인은 잘 모른다.
마로면 갈평새터길 35-2번지 소재 마을 빨래터 부근에서 만난 어르신들 중 갈평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고 계신다는 김철태(85) 어르신은 "구병산 자락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길이 대부분 동네를 통과하는 관계로 이 동네는 옛날부터 물구덩이 동네였어요.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온 동네 곳곳에서 물이 솟아올라 물난리가 나는 마을이었지요." 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지하수가 올라와 샘을 만들고 빨래터로 이용했지만, 김철태 어르신은 "새터에는 구병산자락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땅 위와 땅 속을 반복적으로 흐르면서 정화되어 마을 입구에 맑은 두레박 샘을 만들고, 빨래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빨래터의 유래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마을 입구에 두레박 샘을 만들어 새터 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하고, 마을의 빨래터로 사용하였는데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요.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어요. 1980년대에 간이상수도를 만들면서 두레박 샘은 헐어버리고 빨래터를 정비하였는데, 물이 깨끗해서 지금도 채소도 씻고, 빨래도 한다"고 덧붙였다.
구병산 자락에서 시작해 마을 골목길을 돌아 내려온 물길은 빨래터의 담장 밑 부분에서 흘러나와 폭 약 60-70cm정도의 물길을 만들고, 양 옆을 시멘트로 포장해 빨래판을 만들고, 중간에는 철로 만든 발판 2개를 설치하였다. 주위에는 높다란 돌담을 쌓아올리고, 공중에 지붕을 만들어 비가 올 때나 햇빛이 강할 때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빨래터의 입구에는 오늘도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들이 물길 입구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살고 있다. 오래도록 마을 주민들이 빨래터에 모여 버들치와 함께 옛날의 추억을 이야기 하며, 서로 정담을 나누는 생활문화유산으로 남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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