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보은읍 장속리 담배건조실
(13) 보은읍 장속리 담배건조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6.24 03:23
  • 호수 59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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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동네에서 가장 높았던 황토의 보물창고

옛날 우리네엄마들은 디딜방아로 방아를 찧고 맷돌을 돌려 팥과 콩을 타서(갈아서) 송편 고물을 만들고 물에 불린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다. 어디 이뿐인가. 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도가 아니라 바가지로 물을 뜨거나, 두름박(두레박)에 긴 줄을 매달아 우물을 떠서 펀니기(흙을 구어 만든 넓적하게 생긴 물동이를 이렇게 불렀다)에 담아 이고 집까지 가져오기도 했다. 샘가나 도랑에 잘 생긴 돌을 놓고서 이용했던 빨래터는 세탁기에 밀려나 사라졌고... 이제 이러한 것들은 어르신들의 추억 속에 있거나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들이다. 그 시대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이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대부분 사라졌다. 본보는 남아있는 우리의 소중한 민속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배우고 이제라도 보존의 방법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동네 문화유산을 기록한다.(편집자 주)

 

담배농사는 가장 무더운 여름에 담배 잎을 따서 지게로 운반하고, 건조실에 매달아 밤낮으로 무연탄 아궁이와 씨름하고, 조리 작업하느라 온 가족이 밤잠을 못자는 고통의 상징이었다.
그래도 자식들은 많고 가난하였던 시절, 담배농사는 일시에 돈 다발이 두둑하게 들어오는 최고의 농사였다. 그래서 담배농사의 필수품인 건조실은 부의 상징인 보물창고였다.
그런 보물창고들이 금연운동과 담배시장 개방으로 급격히 줄어들어, 보은군에는 이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가 남아 오늘도 뜯겨질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희귀한 유물이 되어 버렸다. 우리 동네 문화유산에서는 이번 주 '담배건조실'을 테마로 했다. 
담배는 가지 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로 멕시코와 서인도제도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는 1618년(광해군10년) 일본과 중국에서 들어와 남초(南草) 또는 연초(煙草)라고 불렀다.
강한 중독성을 가진 담배는 머리가 좋아지는 약으로 착각하여 할아버지와 손자들이 같이 담배를 피웠고, 긴 장죽을 물고 있어야 양반의 권위가 서는 것으로 생각되어 급격히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668년(현종 9년) 하멜은 표류기에 '조선 아이들은 4, 5세만 되면 담배를 피운다.
남녀노소 가운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 기록하여 네덜란드까지 담배의 나라로 알려졌다. 근래에는 담배 값에 약68%의 담배소비세가 들어있어 약3조7천억 원 이라는 큰돈이 지방수입으로 들어가 내 고향 담배 팔아주기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고향을 다녀오는 차 안에는 으레 고향에서 구입한 담배가 가득 실려 있기도 하였다.
담배농사는 두껍고 넓은 생담배 잎을 따서 건조해야하므로 담배건조실은 담배농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한때는 동네 어귀를 들어서면 집집마다 높다랗게 설치된 담배건조실이 눈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많던 담배건조실이 금연운동과 함께 1988년 담배시장 개방으로 잎담배 재배농가가 줄어들자 허물어 버리고 이제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허물어진 상태로 애물단지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많은 동네를 수소문하며 돌아다니다 보은읍 장속리 이문용(73)씨 댁에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는 담배건조실을 찾았다. 이 건조실은 황토벽돌로 지은 약4m×5m 규모로 지붕위에 습도를 조절하는 환기구를 내고, 벽에는 관찰용 유리창을 달았다.
담배 발 시렁은 직경 6㎝의 통나무로 양쪽 벽에 60㎝ 간격으로 5단을 만들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바닥에는 함석연통을 깔고 황토를 덮고 연료는 무연탄을 물에 개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담배 농사를 그만둔 후에는 최근까지 소 외양간으로 사용하여 건조실 바닥은 변형됐으나 그래도 원형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
이문용 어르신은 "담배농사로 식구들이 모두 삼복더위에 잠도 못자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손끝마다 담뱃진이 묻어 시꺼멓고, 담배 찌는 냄새로 숨을 못 쉴 정도였지요"라며 옛날을 회상한다. "허물어야 하는데 그래도 내가 한참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보물창고라 차마 헐어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라는 말에는 많은 애증이 느껴진다.
담배건조실은 이제 담배농사를 짓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나마 벌크 건조기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옛 영화를 기대할 순 없지만, 허물지 않고 높고 시원한 황토주택으로 리모델링하여 옛 정취를 보존하고 있다는 다른 지역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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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2021-06-28 20: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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