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시냇가
그리운 시냇가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6.17 10:31
  • 호수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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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아침이면 이제 막 떠오른 싱싱한 햇빛을 한 입 물고 입안을 헹구던
시린 물살에 잠을 털어내던
푸성귀며 그릇이며 빨래를 빛나게 헹구어 주던
여름이면 입술이 파래지도록 멱을 감던
물 흐르고 남은 귀퉁이에 풀꽃을 피워놓고 우리를 불러 모으던
동생과 함께 송사리 떼를 쫓다가 등에 지느러미를 달고 힘찬 물살을 헤엄쳐 오르던
따듯한 물에 얼굴을 씻으며
수돗물 콸콸 틀어 그릇을 헹구며
세탁기 돌려 빨래를 하면서

왜 자꾸 나는
제 연못이 그리운 소금쟁이처럼
내 삶의 가장자리를 빙빙 겉돌고 있는 거지?
- '그리운 시냇가'부분 -

위 시는 내 시의 '그리운 시냇가' 부분이다.  부모님이 부치던 시루산 자락에 있는 밭에 갈 때면, 어릴 적 살던 집 앞을 지나서 간다. 앞엔 시냇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지만 예전의 그 시냇가가 아니다. 둑을 쌓아 매끈하게 만들어 정감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처럼 맑은 그 시냇물이 아니다. 오염이 된 그 시냇물에서 더 이상 사람들은 나물을 씻지도 빨래를 하지도 않는다.
어릴 적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시냇물로 달려가 세수를 하고 이를 닦기도 했다. 송사리 떼를 만나면 손 그물을 만들어 송사리를 잡느라 해찰을 하다가 늦는 바람에 깜짝 놀라 일어서기도 했다. 물가의 풀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는 걸 보면서 아침을 시작했다. 
그 때 앞산에서는 뻐꾸기도 산비둘기도 울었으리라. 그때는 물이 맑아 아욱이나 상추를 냇물에서 씻기도 하고, 그릇을 닦고 빨래를 했다. 윗동네에서도 그러했겠지만, 우리 집 앞을 지날 때는 맑은 물이었다. 아마 물이 흐르면서 정화가 되어서 그랬을 게다. 깔끔했던 우리 외할머니는 여름이면 세 번쯤 그 냇가에 몸을 담그곤 했다.
어린 우리들은 우리 집 조금 위에 있는 제법 물이 많은 곳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멱을 감기도 했다. 어떤 날은 쑥을 뜯어 귀를 막기도 하고, 햇볕에 달궈진 따듯한 바위에 앉아 몸을 말리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시냇가에서 오는 줄 알았다. 졸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는 또 얼마나 귀를 맑게 했던가.
그 시절이 그리울 때면 지금은 집 옆에 있는 둑방길을 걷는다. 예전처럼 더 이상 그 시냇물은 아니라도 물오리 떼도 만나고 풀꽃들을 만난다. 그러나 더 이상 멱을 감는 아이들도, 빨래를 하던 엄마들도 만날 수 없다. 오염도 오염이지만 편리에 길들여진 우리의 생활문화가 그 정감 있는 것들을 빼앗아 갔다.
그리운 건 옛사람만이 아니다. 내 어릴 적 시냇가도,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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