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최태하 가옥의 장독대
(10)최태하 가옥의 장독대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6.03 11:07
  • 호수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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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의 또 하나의 세상 장독대
최태하 가옥에는 어머니들의 정성과 인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단지와 시루들이 옛 모습의 장독대들이 남아있다.
최태하 가옥에는 어머니들의 정성과 인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단지와 시루들이 옛 모습의 장독대들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 밤새내린 함박눈이 그치고 아침햇살이 퍼지는 아침에 뒤뜰로 난 방문을 열면, 눈이 수북이 쌓인 장독대의 모습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는 형제들과 뛰어나가 단지 위에 쌓인 눈을 한입씩 물고는 히히 덕 거리며 눈싸움하다가 단지를 깨트리고 어머니한테 야단맞던 장독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  그런 향수어린 정다운 장독대가 이제는 생활의 변화로 모두 없어져 보기 힘든 문화유산이 되었다. 
이번 주 '우리동네 문화유산'에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는 장독대를 테마로 하였다.
옛날부터 우리는 최고의 발효식품인 김치와 간장, 된장, 고추장을 주된 반찬으로 먹고 살았다. 집을 지으면 으레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마당이나 우물가 또는 뒤뜰에 습기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돌로 단을 쌓고 장독대를 만들었다.
장독대는 식품을 보관하는 외에 그 집안의 규모와 안주인의 품격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였다. 찰흙으로 빚은 토기에 잿물을 발라 1125-1200℃로 구어 만든 단지가 옹기, 독, 항아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크고 작은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독대는 우리 삶의 대표적 상징물이기도 했다.
공기가 잘 통하고, 내부의 불순물을 밀어내어 저장성이 좋아 훌륭한 발효식품을 만들어 내는 단지를 우리 조상들은 햇볕을 많이 받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위, 아래는 좁고 가운데를 넓게 만들었다.
해마다 새로 담은 김치와 간장, 된장, 고추장을 가슴에 안고 있는 단지는 식구들의 건강한 밥상을 지켜주던 보물단지였고, 잘 익은 김치와 간장, 된장, 고추장과 고소하면서도 짠 깻잎과 마늘 짱아 치는 가난한 삶이지만 마음을 살찌게 했던 자양분이었다.
그런 단지들의 터전인 장독대는 또한 집안을 지켜주는 신이 머무는 곳으로, 집나간 자식의 무사안일을 위해 정화수 받쳐 들고 새벽까지 정성을 드리던 어머니들의 신앙의 공간이었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 한다'는 속설에 노심초사하면서 이른 봄 볕 좋은 날, 메주에 맑은 소금물을 붓고 부정한 것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항아리 둘레에 붉은 고추와 검은 숯이 끼워진 새끼를 둘러 장맛이 좋기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주술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러던 장독대가 식생활문화의 변화로 어머니의 묵은 손맛으로 빚은 김치와 된장 간장은 기계로 찍어낸 개성 없는 음식들로 바뀌었고, 저장은 김치냉장고에 내어주고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추억속의 물건이 되어버린 요즈음, 장독대를 보기 위해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281번지 소재 최태하 가옥을 찾았다. 이 가옥은 1892년 조선 고종20년에 지어진 건물로(국가문화재자료 139호) 안채 뒤 넓은 뜰 안에 돌담을 배경으로 2단의 석축을 쌓아 만들었다.
장독대에는 어머니들의 정성과 인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50~60개의 크고 작은 단지와 시루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양함 속에서도 질서가 있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아늑함이 느껴지는 옛 모습의 장독대로 남아있다.
최태하 가옥 인근에 사는 최재한(73)씨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장독대로 130년 전 가옥을 지으면서 만든 장독대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이 장독대는 고택이 보존되고 있어 남아 있지 그렇지 않으면 벌써 없어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녹아 있는 이 장독대가 오래도록 보존되어 후대에도 조상의 숨결을 느끼게 하였으면 하는 기대해본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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