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것 같은 회의
노는 것 같은 회의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6.03 11:03
  • 호수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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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 환 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방방장에 먼지 같은 것이 자주 쌓여서 좀 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견 주세요." 주희가 손을 듭니다. "안녕 얘들아?" "안녕 주희야" "저는 방방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타기 전이나 후에 스스로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정이도 손을 듭니다. "안녕 얘들아?" "안녕 우정아" "순서를 정해서 일주일에 한 번 청소를 하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진서가 손을 듭니다. "안녕 얘들아?" "안녕 진서야" "매점처럼 방방장을 관리하는 매니저를 두면 좋겠습니다." 기현이도 손을 듭니다. "안녕 얘들아?" "안녕 기현아" "학생회장이 청소를 하면 어떨까요?" 학생회장은 당혹스러워 합니다. "지금 네 가지 의견이 나왔는데 어느 의견이 나을지 의사를 표시해볼까요? 그런데 학생회장이 청소를 하라는 의견을 포함시키는 것이 나을까요?" "빼요" "맞아요. 빼요" 아이들도 특정 학생이 회장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학생회장은 안도합니다. "그럼 손을 들어봅시다. 여러 번 들어도 좋아요." 
아이들은 '방방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타기 전이나 후에 스스로 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선택했습니다. 올해 들어서 첫 만장일치가 나왔죠. 이 회의가 추구하는 것 중 하나는 '되도록이면 만장일치를 추구하자'입니다. 다수결은 소수의 의견을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매주 1회 학생자치회의를 엽니다. 아이들은 강당에 둥글게 앉아 공동체 철학을 암송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강아지가 집을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거나 동전을 삼켰는데 다행히 잘 배출되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여러 종류의 건의가 나오기도 합니다. 건의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를 공식적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습니다. '운동장에 과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내용은 같더라도 어른이 일방적으로 훈계하는 것과 아이들의 회의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다뤄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의 회의에서 다뤄지는 사안은 굳이 규칙이나 벌칙을 정하지 않아도 예전보다 눈에 띄게 개선되는 것이 보였습니다. 반면 어른들의 잔소리로 나타나는 유의미한 변화는 보기 드뭅니다. 잔소리는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무력해지는 것 같았고, 아이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생활에서 지속되는 메아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결정 또한 현명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컴퓨터실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안건이 나왔을 때입니다. 예상과는 달리 쉬는 시간에 컴퓨터실을 이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신체활동이 줄어드는 것과 몰려다니며 컴퓨터실이 시끄러워 질 것을 염려하더군요.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고 몇몇의 자원자들이 추가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국 학년별로 요일을 정하여 컴퓨터실을 이용하게 하여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 게임류는 엔트리와 한컴타자 정도만을 허용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더군요. 만약 어떤 결정이 결과적으로 실패라면 그 또한 좋은 경험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 회의시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보이게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박수 받는 것도 좋아합니다만 회의의 마지막 5분을 놀이로 마무리 하는 것도 무척 좋아합니다. 놀이는 놀이연구소에 지원한 아이들이 매주 정해오는데, 꼬리잡기, 한 발로 서있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다양한 놀이를 진행하더군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국어나 도덕 시간이기도 합니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며 배려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경청이고, 타인의 의견이 다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간혹 무심결에 내뱉는 비아냥의 언어는 주의를 받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수첩에 열심히 필기하며 적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되도록 모두가 한 번은 이야기하는 것을 요구하며 그만큼 자신이게 주어진 시간이 적어서 말하려는 내용을 잘 정리하여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면 그만큼 설득력 있는 이유를 덧붙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모의적인 상황이 아니라 실제의 것들을 다루기에 현실적이며 그래서 교과서보다 낫습니다. 어쩌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회의를 본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더라도 조급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뒤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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