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5.20 09:25
  • 호수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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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내가 솜털 보송한 새끼였을 적/ 우리를 기른 건 아비였다/ 잘게 찢은 살코기를 입 속에 넣어주며/ 서툰 비행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바람이 불면 비가 오면/ 온 몸으로 막아주던/ 그랬다, 아비 새는/ 둥지는 작았고/ 둥지는 편안했고/ 둥지는, 둥지는, … 아비 새가 있어서/ 새끼들은 하나 둘 날개를 달고/ 세상 속으로 날아갔다

'그리운 둥지'라는 내 시의 부분이다. 어릴 적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시이다. 
사월초파일은 아버지 기일이다. 우리 육남매는 아버지 기일이면 고향 뒷산에 누워계신 아버지 산소에 간다. 소풍처럼 설레며 간다. 간단한 제사 음식을 장만하여 조금은 가파른 산을 올라 숨이 턱턱 막힐 때쯤이면 산소에 도착한다. 그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즐겁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육남매가 다 모이진 못하고 오빠랑 나랑 동생이랑 셋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엄마 보다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자식 사랑이 유난했던 아버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두고 조선에 없는 자식을 키운다고 했다. 그랬다. 아버지는.
우리가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가이없는 사랑을 받은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땐 권위적인 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절대 그런 분이 아니셨다. 어리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대하지도 않으셨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한테 큰소리로 혼나거나 상처받을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늘 칭찬해 주셨고 희망적인 말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남매를 키우면서 왜 말을 안 듣는 자식이 없었을까? 그렇진 않았을 터이다. 다만 아버지는 어른의 잣대로 아이들을 본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입장에서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니까 말을 안 들을 수도 있고 아이니까 말썽도 부렸을 터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말을 안 들어도 말썽을 피워도 아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하셨을 것이라 본다. 내가 자식을 키워 봐도 큰소리 칠 때가 많은데 우리 아버지는 한 번도 그러지 않으셨으니 그 깊은 속에 사랑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이해하는 깊은 마음도 함께 있으셨나 보다.
무조건 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 남매들은 버릇이 없거나 예의바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각자의 주어진 삶을 모두 충실히 살고들 있다. 받은 사랑을 주기도 하면서. 
우리 남매들은 어릴 때 받은 그 사랑의 힘으로 평생을 가슴 든든히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어린이날도 지나고 어버이날도 지나갔다. 좋은 부모란 과연 어떤 부모일까? 그리고 부모의 역할은? 좋은 옷을 사주고 좋은 학원에 보내주고 그래서 좋은 학교에 진학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게 해주는 것만이 훌륭한 부모일까?
그런데 그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산다고 보장할까?
겉만 화려한, 가슴은 텅 빈 그런 삶은 아닐까?
가난한 아버지였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다 못시켜준 아버지였지만, 나는 늘 아버지가 그립다. 그리고 고맙다. 아버지에게 받은 그 사랑의 힘으로 가슴 벅찬 그 사랑의 힘으로, 작은 것에 만족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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