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은읍 삼산2리, 시장, 병원, 술도가, 불종대 있었던 지역 요충지
(3)보은읍 삼산2리, 시장, 병원, 술도가, 불종대 있었던 지역 요충지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5.06 11:22
  • 호수 58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골에서 땔감, 구들장을 가져와 판돈으로 쌀도 사고 막걸리도 한잔했던 곳
삼산2리 마을주민들의 쉼터인 마을회관의 모습.

#옛날 마을 속 풍경
보은의 부자들이 살았다는 삼산2리. 1914년 일제가 토지수탈 목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전까지는 우리 고유의 지명인 왕산미에 속한 마을로 보은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삼산2리는 노티에서 시작된 실개천이 대비, 용암, 쇠저울을 지나 삼산2리 마을 앞에서 휘돌아 가는데 불로천이라고 한다. 불로천은 다시 마을 앞에서 항건천과 만나 큰물줄기를 이루다가 월곶이 앞 월미도에서 보청천과 합친다. 그래서 옛 부터 이곳엔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삼산2리 마을내력을 듣고 싶어 평소 알고 지내던 대수 공업사를 운영하며 지역사회 봉사자로서 사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지인을 만났다.
"예전에 이곳은 나무를 팔던 곳이야, 닭, 토끼 등 가금류를 사고 팔던 가축시전도 있었고, 불종대가 있었어, 긴급한 일이 발생하면 불종대 올라가서 종을 쳐 사람들에게 알렸던 곳이지 또한 시계가 없었던 시절 종으로 정오를 알려 주기도 했었던 곳이기도 해, 한번은 불종대 올라가서 놀다 선생님께 혼이 난적이 있었지," 하면서 옛날 추억들을 들려준다.

동방철공서 옆 버스승강장은 예전의 원남이나 청산사람들이 장날만 되면 뗄감을 팔았던 곳이다.

#부자가 많이 살았다는 왕산미(?)
마을 내력에 대해 한 참을 듣고 노인정을 찾아가니 마을회관 앞에서 김원순 어르신과 김장순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들은 "우리 동네는 원래 대전, 영동으로 가는 길목이었어, 대전은 서다리로 지나갔고, 영동은 남다리를 건너 다녔지, 극장 앞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예전엔 영동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었어, 지금 동방철공서 옆 버스승강장 있는 곳이 예전 원남이나 청산사람들이 장날만 되면 땔감을 팔았던 곳이야, 시골에서 기르던 닭이나 병아리 토끼, 염소 등 가축을 가지고와 팔기도하고 사기도 했던 나무전이지. 예전엔 이곳이 번화가였었고 예전엔 이곳이 참 살기 좋은 곳이었어" 하시면서 삼산2리 자랑을 더하신다.
"옛 부터 이곳은 인심이 좋았던 곳이야 나 시집오니 우리 시어머니가 두부를 만들어서 이곳 시장에서 팔았는데, 그때는 인기가 대단했어, 두부 만들기가 무섭게 팔렸지 또 우리 시어머니께서 인심이 좋아서 시골사람들이 가지고온 물건을 못 팔아 애를 태우면 불러서 사주곤 했었지, 그리고 그냥 보내는 일이 없었어, 꼭 뭐라도 먹여서 보내고 했지, 왜냐하면 그 당시는 점심 굶는 사람들이 많았어,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지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살림살이가 넉넉해서 인심도 후했어요. 누구든지 이곳에 오는 사람은 굶는 이가 없게 했었지, 그리고 이곳에 와서 장사했던 사람치고 돈 못 벌은 사람이 없었어, 무얼 해도 장사가 잘 되었던 곳이야! 다 오래전 이야기지" 하시면서 필자의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신다. 아마도 옛 추억이 생각나시나 보다.
어르신들의 마을이야기를 듣고 있던 필자는 평소 보은의 향토역사에 관심이 많아 보은읍의 마을 내력을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곳이 왕산미라는 확신이 들었다. 보은의 역사를 보면 왕산미에 사는 분들은 부자였고 인심이 후 했다는 기록을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원순 어르신도 마을의 옛날풍경을 기억해냈다. "그땐 사람들이 엄청 많이 살았어요. 장날만 되면 시골에서 나뭇짐이나 구들장을 수레에 가득 싣고 와서 팔면 하루 일당은 되었어요. 그 돈으로 쌀도 사고 고기도 사고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피곤을 풀곤 했지, 아마 그때 시절은 그 맛으로 살았던 것 같아 아이들 교육도 나무팔고 구들 팔아 가르쳤지, 시골에 돈이 어디 있어 그렇게 해서 학비를 마련했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그렇게 살았어, 아~ 그랬군요." 필자의 맞장구에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점점 더 뜨거워진다.

삼산2리는 삼산제방로안으로 보은옥천영동축협, 보은우체국, 성심목욕탕등이 있는 구역이다.

#"술도가도 이 마을에 있었지"
민용순 어르신은 "지금 대왕마트 앞에 도가가 있었지, 옛 날에 도가에서 술을 빚고 남은 술찌기미가 달짝지근한 것이 그렇게 맛있었어, 우리 어렸을 때 엄마 몰래 술 찌기미를 먹고 술이 취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 그땐 왜 그렇게 그게 맛있었는지 몰라 엄마한테 혼나가면서 그걸 그렇게 먹었다니까. 물론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고 먹거리가 그리 많지 않을 때니까 달달한 술찌기미는 배를 불리던 간식으로 아이들 입맛에 잘 맞았겠지, 지금도 가끔 그 시절 도가 생각이 난다고 하시면서 보은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도가 근처를 지나가면 구수한 막걸리 향이 생각나신다고 하신다. 옛 날엔 막걸리술통이 나무로 만든 것이라 술통 근처에 가면 막걸리 향이 솔솔 풍겨오는 바람에 금세 배가고파 왔다"고 하신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들이 민용순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동감했는지 맞아 맞아 하시면서 유괘하게 웃으면서 "맞아요. 그땐 그랬어, 요즘 사람들은 아마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를 거야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라고 말했다.
마을회관 창밖을 한참 보시던 김장순 어르신은 "옛날에 동제의원이라고 있었어, 동제의원 안주인의 인심이 참 좋았지 그 양반이 그렇게 다른 사람 도와주는 걸 좋아 했어"라고 말했다. "아! 성별식당 옆에 있는 동제의원 인가요?" 하고 필자가 되물으니 "지금 자리는 나중에 그리로 옮긴 것이고 옛 날엔 이곳 시장 안에 있었어,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양반 도움을 받았지,"라고 회상했다.
"아~! 그래요. 정말 이곳 시장에 사시던 분들은 인심이 후했나 보내요."라고 말하는 필자에게 아무 말 없이 듣고만 계시던 한 어르신이 왜 그런 걸 묻느냐고 궁금해 하셨다. "아~예 다름이 아니고 요즘 보은군내 마을 소개 글을 쓰는데 어르신들의 기억을 담아 기록하는 중"이라고 하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신다.
어르신들과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마을회관을 나와 대구마트 앞 김동수 이장님이 운영하시는 선우드가구점을 찾았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있는 김동수 이장에게 마을의 현황을 물었다.
김동수 이장은 "130세대 약 25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대부분 6~70대 이상 어르신들이 사신다"고 말했다. 보은의 현실이 삼산2리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김동수 이장은 마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6~70년대 이곳은 보은에서 가장 활발한 상권이 형성 되었던 곳이고 명실상부한 보은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김동수 이장의 추억 속에도 장날만 되면 시골에서 가지고온 나무다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던 마을은 지금은 병원과 시장, 학교, 도서관이 가까이 있고, 교통이 편리해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김 이장은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저녁시간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마을 현황을 듣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전선 지중화 사업 등 여기 저기 마을 보강 공사가 한창이다. 더디지만 이곳도 변화의 물결이 오는 듯하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보은읍내 사거리로 삼산2리 중심지의 모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