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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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5.06 10:33
  • 호수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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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 환 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예전에 샀던 책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텃밭정원에 대해 알려주는 책인데, 최근 많은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텃밭의 물결에 저도 참여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흙을 자연스레 만질 수 있고 생명이 자라는 것을 지켜볼 수 있으며 그들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기후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야 텃밭상자를 완성해서 흙을 채워놓았기에 텃밭에 정말 인문학이 담겨 있는지 확인하려면 한참이 걸리겠지만 그 과정에는 충분히 융합의 여지가 있음을, 프로젝트 주제로의 자격이 충분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식물을 가꾸는 일에 대해서는 경험도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이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수업의 메뉴로 구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 재료들은 굳이 구분하자면 국어와 수학, 미술인데 텃밭과 관련한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프로젝트의 과정들을 발표 자료로 정리하는 것, 구상도를 스케치하고 상자를 꾸미는 것,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에 달하는 텃밭상자의 일정한 비율로 축소모형을 만드는 것, 부피 계산을 통해 그 안에 들어갈 흙의 양을 계산해보는 것 등의 레시피를 포함합니다. 
얼핏 보면 텃밭상자를 만들고 가꾸며 수확하는 단순한 과정이겠지만 그 시작만 해도 여러 융합이 들어갔고 필요했습니다. 과목 간 융합, 아이들 간의 융합, 어른 간의 융합 등이 말입니다. 특히 아이들끼리 융합하는 과정은 책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도덕 수업이 됩니다. 나무를 비와 햇빛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스테인을 바르는 작업을 학년별로 하고 있었는데 한 선생님이 시간이 다 되었다며 아이들에게 들어가자고 할 때 "선생님 우정이 형 칠하는 거 좀 더 도와주고 가면 안 돼요?"라고 묻는 아이의 목소리와 마음 자체가 얼마나 따뜻한지요. 책 속의 단편적 일화를 듣는 것은 아이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목소리는 듣고 있던 주변의 아이들 마음에 닿습니다.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보다 이런 순간을 적절히 칭찬하고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 서로 돕고 양보하며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더 나은 도덕 수업임은 확실합니다. 이를 보던 어른들은 관심을 가지며 자연스레 나와서 손을 보태기도 하죠.
한편 융합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교사 간의 융합 같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이 각자의 수업만을 합니다. 교실과 교실 사이의 물리적인 벽, 교과 간의 벽, 인식의 벽, 제도의 벽이 존재합니다. 여러 벽이 있으니 갇혀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많은 수의 과목을 한 선생님에게서만 배우는 것과 프로젝트별로 구성된 둘 혹은 셋의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할까요. 전자만이 가능하다면 아이들도 함께 갇힌 셈이니 그래서 쉬는 시간을 그토록 기다리는 것일지 모릅니다.
텃밭을 핑계로 융합을 이야기한 것은 융합에는 참여한 이와 이끈 이 모두가 성장하는 독특한 힘이 있다는 것을 꽤 오래전부터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좀 더 알거나 할 줄 알게 되는 것 이상의 성장 말이죠.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다가 어른들이 이를 솔선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협의 과정을 아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게 하기도 하죠.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의 시대에서 인간이 AI를 앞설 수 있는 부분은 협동이라고 말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도, 기후위기를 타개하는 작업도 협동이 없으면 힘듭니다. 비정상적으로 소수에게 몰린 부의 건강한 재분배 또한 협동의 정신, 서로를 보듬는 의식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하죠. 그리니 무엇보다도 협동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경험하게 하는 것이 어른들의 중요한 과제 같습니다. 
텃밭 또한 그 자체로 융합이고 협동이라고 합니다. 흙과 여러 미생물, 토마토와 부추처럼 섞어지으면 서로 돕는 작물들을 통해 아이들이 뭔가를 느낀다면 그것이 인문학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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