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4.29 10:03
  • 호수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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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봄이지만 한낮의 날씨는 초여름이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꽃들은 지난해보다 열흘 정도 빨리 피어났다. 과수들도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잎도 꽃도 예전만 못하다. 갈수록 더워지는 지구의 날들이 걱정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예외는 아니다. 갈수록 삭막하고 매정하다. 사람의 도리나 가치보다 눈앞에 이익이 우선이다. 
어느 한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주하고 겪게 되는 모든 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누구 탓이라 할 수도 없다. 시대를 탓하기도 무색하다. 나랏님 욕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지만 푸념이나 한풀이와 다름없다. 원인을 분석하고 해석하기도 어렵다. 보여 지고 들려오는 많은 것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뭇가지는 고요 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 형국이다.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내일을 기약하자는 격려도 머쓱하다. 희망을 노래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자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고 용기를 얻으며, 살맛 나는 세상임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노동자 시인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고 외쳤다. 그렇다. 사람이 희망이고 활력소며 세상을 밝고 맑고 향기롭게 만들 수 있다. 
며칠 전 이른 새벽 배달일로 바쁜 와중에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 연기가 나는 걸 발견, 바로 119에 신고하고 휴대용 소화기로 진화까지 한 택배기사분의 소식이 전해졌다. 쉽지 않은 판단이고 행동이었을 것이다. "(저는) 만약에 좀 늦더라도 좀 더 뛰면 되니까, 그런데 사람 생명은 그게 아니 잖아요"라는 인터뷰는 감동이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일자리를 잃고 가족과 헤어져 신용불량 상태로 산속 움막에 혼자 살다 배가 고파 떡과 쌀을 훔친 40대 절도범이 있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경찰은 법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취업을 주선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도왔다. 떡집 주인과 검찰도 함께 용서하고 협력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죄를 지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사회로 돌아갈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도 경찰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말의 울림이 컸다.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 눈보라 치는 서울역 앞에서 추위에 떠는 노숙자를 위해 자신의 방한 점퍼와 장갑을 벗어 주고 오만원까지 건네준 이름 모를 신사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어떤 난로보다 세상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만들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위급한 동생의 긴급 수술을 위해 도움을 요청한 누나의 호소에 헌혈증 150장이 쇄도하고 지정 헌혈을 문의하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도 1천여통에 달했다는 뉴스는 더불어 사는 세상의 참모습을 보여 줬다. 심각한 고속도로 사고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구조해주고 뒷수습까지 한 뒤 홀연히 자리를 떠난 분들의 고마움은 직접 경험한 일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하게 새겨진다. 올해는 타국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희생된 '의인 이수현'의 20주기를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사뭇 숙연해지는 시간이다. 
살만한 세상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지위가 높으며 권력이 있는 사람이 의인이 되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 일상 속에서 평범한 시민이 의인이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우리 주변에 의인들이 있기에 세상은 뒤틀리면서도 균형을 찾아가는 듯하다. 어느 곳, 어느 위치에 있든 생활 속의 의인이 넘쳐나는 사회는 어떨까? 
정의의 편에 서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 만든 검사가 의인이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며 정성껏 치료해 주는 의사도 의인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자신이 가진 힘과 권한을 바르게 쓸줄 아는 정치인이 의인이고, 사심 없이 모두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의인이다.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 의인이다. 주위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감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의인이다. 좀 더 가진 것이 자신만의 몫이 아님을 알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베풀 줄 아는 사람이 의인이다. 웃음이 사라지고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에 단비 같은 위로의 말과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의인이다.
많은 것이 무너지고 뒤틀린 세상, 누군가 의인이 되어 나타나길 기다리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삶 속에 조그만 울림을 주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세상을 그려 본다. 
높고 힘 있는 곳에서 스스로의 역할과 존재를 찾지 않아도 된다. 낮고 그늘진 곳, 작고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의인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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