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은읍 강신리 방앗간
(2)보은읍 강신리 방앗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4.08 10:10
  • 호수 58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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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지붕으로 사진작가들의 사랑 흠뻑
보은읍 강신리에 있는 김병억씨네 방앗간. 빨간 지붕을 자랑하며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옛날 우리네엄마들은 디딜방아로 방아를 찧고 맷돌을 돌려 팥과 콩을 타서(갈아서) 송편 고물을 만들고 물에 불린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다. 어디 이뿐인가. 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도가 아니라 바가지로 물을 뜨거나, 두름박(두레박)에 긴 줄을 매달아 우물을 떠서 펀니기(흙을 구어 만든 넓적하게 생긴 물동이를 이렇게 불렀다)에 담아 이고 집까지 가져오기도 했다. 샘가나 도랑에 잘 생긴 돌을 놓고서 이용했던 빨래터는 세탁기에 밀려나 사라졌고....이제 이러한 것들은 어르신들의 추억 속에 있거나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들이다. 그 시대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이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대부분 사라졌다. 본보는 남아있는 우리의 소중한 민속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배우고 이제라도 보존의 방법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동네 문화유산을 기록한다.(편집자 주)

지금은 대부분 방앗간을 정미소(精米所), 도정공장(搗精工場), 미곡처리장으로 불리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감 가는 호칭은 '방앗간'이 아닌가 싶다.
보은에는 1945년 광복 이전부터 정부 양곡을 가공하는 대형방앗간이 있었고, 6.25 전쟁 후에는 동네 사람들의 방아를 찧어주는 크고 작은 방앗간이 여러 군데 생겨났다. 
보은읍 강신리에 있는 김병억(69)씨네 방앗간도 1950년대 초반 이곳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방앗간은 동학공원을 가다 종곡초등학교를 지나면 좌측 새말로 들어가는 종곡천 다리 옆에서 지금도 아름다운 빨간 지붕을 자랑하며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병억씨에 의하면, 이 방앗간은 1998년 야심찬 꿈을 가지고, 정미소 조합을 통해 인수, 강신리, 누청리, 성족리의 1구와 2구 6개 마을의 쌀과 보리 그리고 밀의 도정작업을 맡아 왔다. 당시 삯으로는 농가에서 직접 벼를 가져오면 쌀 한가마니에 4되, 농가를 방문해 벼를 싣고 와서 찧어주면 5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먼지를 뒤 집어 쓰며, 80㎏정도의 쌀가마를 움직이느라 항상  몸이 파김치가 되어도, 돈을 벌어 자식 키우는 재미로 힘 드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점차 사회가 변하여 벼의 수확은 늘었지만 농협미곡처리장등 대규모의 성능이 우수한 방앗간들이 들어서고, 수확 하면 바로 농협에서 수매를 하고 집에서 먹을 쌀만 방앗간에 위탁하므로 점점 일거리가 줄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10년경 폐업을 했고 현재까지 방치된 상태라고 한다.

방앗간 내부의 모습.
방앗간 내부의 모습.

굳게 잠겨있던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10년 이상을 잠자고 있던 현미기 1대와 정미기 2대가 수 십 년간 겹겹이 쌓인 먼지 속에 묻혀있지만, 피대(벨트)가 바퀴를 굳게 잡고 언제라도 신호만 주면 윙윙 힘차게 돌아갈 듯 옛 모습을 간직  하고 있다. 왕겨가 나오는 곳에는 아직도 잔재가 쌓여 방앗간임을 암시하고, 빨간 지붕의 아름다운 모습은 오늘도 사진작가들은 물론 속리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김병억씨도 정과 애환이 겹겹이 쌓인 이 방앗간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하고, 십여년을 정감어린 가슴으로 안고 있으나, 앞으로 얼마나 버틸지 모르는 불안 속에, 방앗간 카페라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색다른 공간에서 옛정취도 느끼고, 정도 나누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하여 전 국민이 오고 싶어 하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본다. 
서성범(보은군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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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2021-05-01 08:51:35
근대문화유산으로 잘 보존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