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상상 ③
발칙한 상상 ③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4.01 09:46
  • 호수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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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다섯, 국회의원이 200명 이하로 줄어들고,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 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 연령 제한이 있고 3선 이상은 못 하게 하는 제도도 도입되면 금상첨화다. 
국회의원들이 지금껏 보여 주는 모습이나 내뱉는 말들은 개그맨도 웃고 갈 코미디 판이었다. 국회의원을 지냈던 코미디언의 대명사 '이주일'님은 의원을 한 소감이 어땠냐는 질문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국회에 가 보니 나 빼고 전부 웃긴 사람들뿐이더라'고 했다. 개그맨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하고 개그프로그램 시청률 하락의 주원인이 국회 안팎에서 의원들이 보여 주는 모습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실제로 하는 일이나 가지고 있는 능력, 갖춰야 할 도덕성과 책임감, 몸에 배어 있어야 할 봉사 정신 등은 거의 모두 쇼나 가면이다. 
그들의 입은 거칠고 천박하며 얼굴은 철갑피를 둘렀다.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거액의 세비와 특활비, 운영비를 챙기고 온갖 특권은 다 누린다. 선거철에만 국민을 상전으로 모신다. 당선만 되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얻은 듯 군림하고 대접받으려 한다. 힘없고 억울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은 만들지 않는다.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고 국가 예산을 심의, 의결하기 위한 전문성도 부족하다. 하물며 민의를 제대로 수렴해 반영하지도 못한다. 
주어진 권한과 혜택이 너무 많다. 국민 세금이 가장 아깝게 쓰이는 곳이다. 불합리한 집단의 대표주자가 국회의원임을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똑바로 못하면서 온갖 특권은 다 누리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국민에게는 짐이다. '높은 사람 뽑으려고 선거하지 않았다'는 어느 작가의 울림이 크다. 소수정예의 무보수 의원들이 명예를 걸고 책임과 봉사의 정신으로 국민을 섬기며 일하는 그날을 마주하고 싶다. 
여섯, 혐오와 차별이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배척하고 무시하며 굴종시키려 한다. 맹목적이고 획일화된 기준으로 우월함을 드러내며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앞세워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억누르고 지배하려 했다.  공고한 신분제 사회에서는 계급으로, 절대 신을 내세운 종교의 믿음 앞에서는 유일신의 이름으로, 이념으로 무장된 좌, 우 대립은 민족의 분단으로 이어져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되풀이했다. 유혈의 시대, 보복의 악순환, 극한의 대립이 반복된 것이다.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 세워진 넘치는 풍요와 모든 가치의 정점에 있는 자본의 편중은 또 다른 차별을 낳았다. 지금부터라도 많이 가진 것으로 덜 가지고 못 가진 사람을 억누르지 않는 세상, 학력과 학벌로 모든 게 판가름 나고 주어지는 것이 아닌 각자의 능력과 개성이 존중되고 인정받는 세상, 권력으로 군림하며 사익을 추구하려 들지 않는 세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제약이 따르지 않는 세상,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 세상,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사라진 세상, 이주민과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무시와 천대가 없는 세상, 익명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앞에 스러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누구도 자신의 일상 속에서 소외감이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나라, 어디서나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 구성원으로의 가치가 당연시되는 그런 나라를 상상해 본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천부 인권사상이 가장 적극적으로 실현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길 염원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는 현란하고 눈부시다. 그 화려함과 반짝임 속에 우리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며 지나치고 있다. 변화가 일어나는 데 변해야 할 것은 변하지 않고 돌연변이처럼 출몰하고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다. 진정 우리가 바꾸고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일상과 세상의 일들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일까. 익숙해진 것들에 대한 길들여짐 때문일까. 감히 '발칙한 상상'이란 제목을 빌려 꿈같은 상상, 간절한 생각들을 몇 가지 펼쳐 봤다. 아직 풀어 놓지 못한 나머지 발칙한 상상은 마음속에 담아 두련다. 이미 어떤 것들은 수면위로 떠올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어떤 일은 용기와 도전으로 당당하게 맞선 사람들로 인해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며 긍정적 변화가 차근차근 나타나고 있다. 
세상은 더디지만 그렇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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