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의 분(粉)
곶감의 분(粉)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2.04 10:26
  • 호수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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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 진(마로 한중, 백록동)

설 명절을 앞두고 차례상에 오르는 곶감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대형상가나 소형매점 진열대에도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마침 곶감 하나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독자의 글을 접했다.
2년 전까지 대형생협의 하나인 '한살림'에 곶감을 내고 난 이후에 나는 더이상 곶감을 팔지않는다. 어쩌면 팔지 못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당시에 출하하고 얼마 안돼서 한살림의 한 조합원에게 클레임 문자를 받은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한살림에서 곶감 3팩을 주문했습니다. 저는 사진으로 봤을 때 옛날 곶감처럼 생긴건 줄 알고 주문했는데 곶감이 꼭 가정용건조기에 말린 거 같이 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원래 이런 종류인가요? 제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요."
광고에서 보던 것처럼 곶감에 분이 나있지 않아서 마음에 안든다고 보낸 문자이고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곶감은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처럼 '상품의 이미지는 해당제품과 차이가 날수 있습니다.'라는 문구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곶감이 되기까지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해되는 농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나무품종, 수령, 재배방식, 토양상태, 수확과 작업과정에 깃든 농부의 모든 것이 작은 곶감하나에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감나무를 자연재배 원칙으로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생산된 감으로 만든 곶감에 일일이 자연재배 스티커를 사서 별도로 붙여서 보냈는데 그것에 다른 사유로 클레임이 온 것이다. 현실의 실제를 모르면서 그동안 세상 혼자 망상 떤 것처럼 행동한 것 같아 자괴감이 밀려왔다. 몇 년째 혼자서 출하하는 것들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자연재배 곶감을 알려왔는데, 그동안 사실 단 한 사람의 조합원도 이 '자연재배 스티커'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 혼자 딸딸이를 친 것일까? 어쩌면 나도 힘들고 지쳐서 이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클레임으로 곶감농사를 이제 그만두게 만들어주는 건수로 합리화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분(粉)에 대한 클레임은 소비자 회원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저도 귀농해서 직접 농사짓고 곶감을 해보니 곶감의 '분'이 건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해보면 옛날곶감은 '분'이 하얗게 났지만 곶감은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또하나 최근에 안 사실인데 큰 곶감을 오래 말리거나 곶감을 인위적으로 손으로 눌러줘도 곧지나서 '분'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안에 있는 당분이 밀려 밖으로 나오는 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출하시기가 정해져 저장을 더 할수 없었고, 개인적으로도 건조나 모양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곶감으로 공급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당장에 '분'이 없더라도 원하시는 감칠맛이 있으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곶감은 발효식품입니다.  지금 드셔보셔도 되지만 서늘한 곳에 직접 보관하시다 보면 자연히 더 마르게 되면서 '분'이 나고 맛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건조기나 유황으로 급하게 말린 곶감과는 다르겠으나 시간이 걸리는 단점은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다른 문제가 있다면 주문상담팀에 연락주시면 잘 대응해드릴 것 같습니다. 송구하고 또 말씀해주셔서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라고.
전통식품은 재현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 보이지 않는 과정을 모르고 하나의 공업용 상품처럼 인식될수록 재래방식을 지켜가는 농민과 장인은 얼마나 상처를 받고 소외될지 짐작해본다. 
이러한 추세를 여과없이 반영하면서 올해부터 한살림은 곶감을 농가가공품으로 취급하며 건조시설 및 작업실 구비, 미세먼지차단 및 보관 및 포장에 대한 지침을 적용한다. 그 지침에 의하면 이제 농가처마에 손수 깎아 매달았던 자연건조곶감은 더욱 입지가 사라져가는 것이다.
소농이 손수 만들던 좋은 것들이 사라져간다. 그런데 친환경이라면서 좋은 걸 찾아 먹는다는 소비자가 정작 그 과정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유통에 선택권을 모두 맡겨버리면서 전통농산물을 공장상품화시켜가는 것을 과연 소비자 정서라는 이유로 모두 설명이 될까? 그래서 뭐가? 누가 과연 좋을 일인가? 
농가도 잘 알고 있다. 
미숙성된 단단한 감을 기계로 깎고 건조실에서 열흘 만에 나오는 곶감은, 옛날 엄마가 깎아서 줄에 매달아 건조하는 두 달 동안 하나씩 몰래 빼먹던 그 맛으로 절대 재현되지 못한다는 걸!
그저 농민은, 그냥 그들이 원하니까 원하는 만큼까지만 만들어줄 뿐이다. 그렇게 농사지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올곧이 재현돼야 나올 수 있는 농가의 전통적인 식품마저도 유통의 논리에 밀려 공장상품으로 취급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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