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상상 ①
발칙한 상상 ①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1.28 10:23
  • 호수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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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관습과 전통은 뿌리가 깊고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도와 규범은 견고하고 구속력이 강하다. 이들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 사회에서 관계유지의 중요한 형식이고 질서유지의 필요충분조건 들이다. 
더불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아무런 의문이나 고민, 또는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이거나 따라가게 된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삶이다. 
세월 탓일까? 요즘 들어 부쩍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엉뚱하고 느닷없기도 하다. 헛된 생각이고 편협한 사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망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생각들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고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실마리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소박한 기대감 때문이다. 
비록 하찮은 상상일지라도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흥미로운 발상이 되어 언젠가는 현실이 되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불편하게 여길 수 있지만, 통념을 깨는 발칙한 상상들을 몇 회에 걸쳐 펼쳐 보고자 한다.
하나, 대학입시가 폐지되고 대학의 서열화가 없어지는 날을 상상해 본다. 백년지대계라 부르짖는 교육은 여전히 백 년 전에 머물러 있다. 신분 제도의 첫 관문처럼 서열화된 대학에 진학하는 전 근대적 방식은 여전히 공고하다. 한 날, 한 시에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시험을 치러 성적순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교육을 통해 식민화, 우민화, 서열화를 양산하고 고착시키는 오래된 교육제도의 모순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대학등록금 전 세계 1위, 사립대학 비율도 압도적 1위다. 전 세계 대학 진학률 1위에 자살률도 1위다. 밀레니엄이라 부르던 21세기를 맞이한 지도 20여 년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더 치열한 경쟁과 극심한 양극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짧은 시간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는 충격적이다. 인공지능이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영역을 대신하고 있다. 
손안에 든 스마트폰으로는 전 세계 구석구석의 모든 일들을 동시에 공유할 수 있다. 정보화의 첨단을 달리는 시대인 만큼 필요한 지식과 상식은 검색을 통해 바로 찾고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주입식 암기 위주 학습이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백 년은커녕 십 년도 담보하지 못한다. 
얼마 전 서울대 재학생 중 학점이 높은 학생들의 공부 방법을 조사해 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강의 중인 교수들의 말 한마디 토씨 하나까지 빠트리지 않고 녹음하거나 받아 적고 통째로 외워서 답안지에 그대로 옮겨 적은 학생들이 모두 고학점을 받았다. 지식만 있고 지혜는 없는 지도층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지식인들이 저지른 악행과 탐욕은 지금도 경험하고 있으며 그 폐해는 오롯이 우리 몫이다. 
이젠 공부에 대한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세계적 명문 대학의 강의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시대다. 구글이나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인재를 뽑을 때 학력을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위한 선행조건은 대학입시 폐지와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고 재단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사립대학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가장 많이 해야 되는 것이 여행과 독서, 연애라고 한다. 그런 날이 오기를 꿈꿔 본다.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둘, 명절이 없어지는 날도 상상해 본다. 명절 문화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모순과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공식화했어도 새해란 개념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양력 1월 1일과 설날에 반복하는 것이 왠지 어색하다. 추석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문순태 님은 '진짜 한가위는 우리 손으로 우리 땅에 농사를 지은 쌀로 송편과 술을 빚는 날일세'라고 정의했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인 시대는 저물었다. 햅쌀과 햇과일로 음식을 장만하지도 않는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엄청난 교통체증은 통과의례다. 핵가족과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명절 때만 되면 예상치 못한 갈등과 분란이 생긴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이래저래 모순이고 부담되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결혼한 자녀들은 어차피 한자리에 모이지도 못한다. 명절 증후군이라 불리는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는 점점 가중되고 있다. 
물론, 명절 자체가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건 아니다. 시대와 사회 현상의 변화에 발맞춰 달라지고 변화해야 한다. 명절의 의미를 심도 있게 재정립해 볼 시점이 도래했다. 모두가 즐거운 명절, 함께 치르는 축제가 되지 못하는 전통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명절 문화가 확 달라져 모두가 기다리고 행복해지는 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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