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확장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1.07 10:56
  • 호수 57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니스트 강 환 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두 개의 다른 모습을 가진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하나는 월급을 받는 공립초등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기획자 비용을 받는 주말 목공 초중학교입니다. 이 두 형태를 다른 모습의 학교라고 가정하니 그 온도차가 무척 크게 느껴졌습니다. 편의상 초등학교는 1로, 목공학교는 2로 표현토록 하겠습니다. 1은 짧은 기간의 근무까지 포함하면 7곳을 거쳤는데, 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했습니다.
우선 수업과 자유의 모습이 다릅니다. 1에는 수업 참여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없습니다. 싫건 좋건 쉬는 시간이 끝나면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결정권은 시간표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기유발이라는 이름으로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2에서는 참가자가 본인의 뜻에 따라 수업 중간에 쉬기도 하고 참여하지 않기도 합니다. 애초에 끌고 가는 것을 지양했습니다. 끌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있어도 소화까지 시킬 수는 없습니다. 단, 참여도가 너무 저조할 경우 약간의 촉진 정도는 있었습니다. "언제 시작할 생각이야?" "오늘은 좀 쉬고 싶어요." "마음 생기면 좀 해봐." 정도였습니다. 기억을 제 위주로 왜곡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실은 다른 친구들이 작업을 해나가면서 결과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실제적인 촉진이었습니다. 서로 놀기도 하지만 자극을 주고 받기도 하지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경쟁을 부추긴 적은 없습니다. 못 박기 대회를 한 적은 있습니다.
둘째는 협업입니다. 1에서의 교사 간 협업은 주로 행사에 한정됩니다. 수업 자체를 협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주로 운동회와 같은 행사를 함께 꾸립니다. 2에서의 교사 간 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입니다. 수업의 기획과 진행 및 마무리까지 함께 했습니다. 이런 형태에서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막연함과 외로움이라는 걸림돌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주도성입니다. 1에서의 수업은 대부분 교사의 단독 기획과 진행이 중심인 곳이 많습니다. 나가야할 진도가 산더미이기 때문에 서로 여유롭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준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될 수 있지요. 2의 수업에서의 최대 목표는 손의 재주를 주도적으로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가 끌고 가고 싶지 않은 재미없는 주제, 스스로 끌고 갈 수 없는 어려운 난이도에서 그들의 주도성은 한없이 내려갔습니다. 흥미롭고 도전이 가능한 수준에서 주어진 주도성은 몰입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집 만들기가 그랬고, 놀이터 만들기 프로젝트가 그랬습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의 기둥만을 제작하여 제공했으며, 살을 붙이고 미끄럼틀과 흔들다리를 만드는 것은 참가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우리는 막히는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고 아이들은 좀 쉬라고 해도 망치질을 이어나갔습니다. 교사가 협업하면 아이들 또한 협업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딱딱한 학년제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나이를 따지는 것은 결국 사람을 갈라놓을 뿐입니다. 꼰대 의식도 싹 틉니다.
넷째는 철학입니다. 저는 철학을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심을 잡아주는 가치, 행위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1의 설립과정에는 철학 세우기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를 나중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유행 따라 사람 따라 흔들리는 곳이 많았습니다. 반면 2는 철학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이 손으로 할 줄 아는 것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다가 뭐라도 하자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철학이 있다는 것, 행위의 동기가 명확하다는 것은 쓸데없는 다툼과 탈선을 막아주었다고 봅니다.
다섯째는 공간입니다. 1은 사용자가 만든 공간이 아닙니다. 반면 2는 100% 사용자가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책상, 의자, 공방, 벤치, 짚라인 등을 아이들과 강사님들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공간의 객체가 아닌 주체였습니다. 
무엇이 아이들을 움직이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교과서 진도에 끌려 다니는지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찾아다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격려하고자 아이를 학교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SKY를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미련한 짓입니다. 
한편으로는 둘 중 어느 학교의 형태가 좋다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규격화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다양화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이와 관련하여 제가 하는 일은 결국 선택지를 넓히는 과정입니다. 현재 공립체제 내에서 수요자는 중학교 이하의 경우 두 가지 선택지만을 갖습니다. 일반학교와 혁신학교 뿐이죠. 저는 이것이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한 가지의 선택지가 더 생겨야 하고 그것이 공립형 대안학교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2의 모습에 가까운, 자유와 놀이가 살아있는 학교를 실현하고자 움직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그 정체를 공개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습니다. 하나로 시작하지만 여러 곳에 늘어날 것입니다. 아이들을 아끼는 분들이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신다면 말이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