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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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12.24 09:39
  • 호수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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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경 진
마로면 한중리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가 지나면 일년중 가장 춥다는 소한이다. 동북아문화에서는 한해의 시작을 봄이 아니라 사실 겨울에 두고 있고 겨울이야말로 겉으로는 만물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의 생명주기가 속에서부터 눈뜨고 기지개를 켜는 시작의 시기라고 보았다.  
하지이후에 가장 더운 삼복시절이 오는 것처럼 동지 이후 더욱 추워질지언정 해는 하루하루 더 비치고 밤그늘은 천천히 작아진다. 다만 우리가 전등 켜듯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과학에서 밝혀진 바로는, 지구가 도는 속도만 해도 시속 1천300㎞이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는 시속 10만㎞가 넘는다. 이쯤만 되도 우리 지각이 못느끼는게 다행이다. 어지러워서 어떻게 견딜까? 그런데 더 크게가면 더 빨라진다. 우리 은하중심으로 도는 태양의 공전속도는 초당 220㎞라고 한다. 가장 빠른 총알도 초속 1㎞가 될까말까 하는걸 보면 우리가 타고 있는 우주라는 집은 초고속 회전차이다. 빅뱅 대폭발 이후 계속해서 팽창되는 우주전체의 확장속도도 빛처럼 빠른 속도로 밖으로 나아간다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겨울철 밤하늘의 별을 보면 인간이란건 어떤 존재로 이 작디작은 행성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하늘의 운행은 쉼없이 움직이고 기틀은 끊김없이 연결되어 거대하고 무수한 원들의 집합체가 몇천억만 광년의 빛들로 반짝인다. 너무나 가득차 있으면서 너무 넓고 넓어서 텅비어 있다. '우리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말할수밖에 없다.   
동지절 21일에 또 하나의 하늘 뉴스로는 토성과 목성이 일직선으로 만났다. 물론 지구에서 보는 시각에서이지 두 행성이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목성과 토성이 각각 12년, 30년의 공전주기라서 이 둘이 지구입장에서 서로 겹쳐서 찾아오는 것은 대략 400년 주기가 된다. 이른바 조선조 인조반정이후에 다시 만난 것이다. 현대천문학에선 천문관측쇼라고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오성이 서로 만나는 것을 범한다고 하여 대체로 불길하게 여겼다. '천문류초'에 의하면, 목성이 토성과 합하면 내란이 발생하고 기근이 든다하였고 토성이 목성과 합하면 나라 전체에 기근이 든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통 동양천문이 워낙 맥이 끊기고 멀어져 사람들이 대개 그런가보다하고 지나친다. 그러나 최근 기후위기를 1차로 직접 폭격당하는 농업에서는 내년 농사불안이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요즘 하도 세상이 요상하고 오리무중하니 정말 내란도 기근도, 병겁이나 지진해일도 기후폭탄도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빌고 설혹 오더라도 시늉만 하고 물러가기를 또 비는 심정이다. 
그러나 동지는 태양절이다. 동지에 목성과 토성이 만났다. 해가 다시 속깊이 움텨 살아나는 반전이 펼쳐져서 갈데까지 간 겨울의 물밑은 반동이 흐르기 시작했다. 설령 한겨울같은 기근과 내란이 혹한처럼 우리 삶에 몰아치더라도 언제든 한순간에 '톡'하고 봄은 반드시 들어선다.  완연한 봄을 봐서야 비로소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동지새해의 사람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여기 동무님들, 우리에겐 새해시작이 벌써 전이었슈~ 우리가 미리 준비해놓은 밥과 국을 같이 자숩시다.'하고 권하면서 말이다. 
동지에 시작하는 해는 그 해의 밥을 준비하고 국을 마련하는 빛이다. 밥이 하늘이고 하늘이 밥이다. 동지에 넉넉히 새날을 준비해온 사람들은 서로 함께 먹고사는 길을 먼저 준비하고 가장 나중 사람까지 먹을 것을 챙겨주는 해같은 사람이다. 동지해를 더 받은 마음이어서 더 넉넉하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가장 어려울 때야말로 사람들은 비로소 일상의 삶을 바꿔가고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만들어가기도 한다. 스스로 바로 서는 힘을 체득한 사람은 알게된다. 세상은 누가 구해주거나 정치인이 바꿔주거나 스승이 깨우쳐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하고 내 잘못을 내가 고치고 내가 나를 깨쳐야만 그것에 상응하는 그만큼의 세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그에 걸맞는 지도자도 만나게 된다. 나 스스로 좋은 마음이 있어야 좋은 사람이 나오고 좋은 정치가 만들어진다. 가장 어두울 때 가장 작은 빛도 빛나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도약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너무 어렵고 힘들면 잠시라도 쉬고 멈추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사회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어떡하든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늘을 미루어보며 내 생명력을 생각하면 우리가 매일 하늘같은 밥을 먹고 매순간 하늘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명이라는 것,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크고 너무 빨라서 우리는 '오직 모를 뿐'이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이미 하늘에서 살아갈 것을 허락받고 나온 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우리의 삶을 여전히 품어주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세계화가 아니라 지구화를 해야한다는 것을 자각하면 된다. 지구전체를 생각하면서 그저 살면된다. 우리 몸이나 다를바 없는 땅을 풍요롭게 가꾸면 밥이 나오고 우리의 맘을 맑게 해주는 물을 잘 들이면 약이 나온다.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어떤 추위가 오고 막바지 겨울이 우릴 흔들어도 음양은 이미 바뀌었고 별자리는 벌써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하늘을 보고 북두칠성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은 민족이다.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서는 마스크와 디지털기술, 백신, 새벽배송과 수소차 같은 것들보다는 물과 땅과 공기와 햇빛, 그리고 나무와 새와 물고기, 밥과 친구처럼 내 생명력과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자연의 것들을 더 생각하고 더 챙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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