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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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12.10 09:42
  • 호수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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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 환 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경까지 이어지는 6교시 수업, 이후 8교시까지의 방과후수업 혹은 학원, 저녁밥을 먹을 무렵에야 귀가하는 일정. 이는 무려 8~10교시를 소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수준의 주입을 아이들은 매일 견뎌야 합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시간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냅니다.
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봅니다. 요즘 많은 학교들은 짧았던 쉬는 시간을 모아 중간놀이시간의 방식을 취하고 있죠. 실제적인 그 시간이 25분 정도이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또 그 정도가 남습니다. 아주 서둘러 먹었을 경우죠. 이 두 가지의 시간이 그나마 길게 놀 수 있는 시간입니다만 합쳐도 1시간이 채 안됩니다. 7~8시간을 학교나 학원에 있으면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시간은 고작 1시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의 현실이 그러합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릴 때부터 견뎌야 한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경쟁을 없애려고 하지는 않으면서요. 공부는 하나의 재능일 뿐임을 모두가 외면합니다.
이쯤 되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악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면서 말이죠. 
우선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란 제약이나 간섭이 없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가 주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수업, 스마트폰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것, 어른들이 이끄는 활동 등을 놀이로는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로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물리적으로 놀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수업을 거부할 권리가 없고,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시간을 온갖 수업으로 가득 채울 권리가 있나 봅니다. 많은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놀이를 '시간낭비'로 간주합니다. 그들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불안 때문일까요? 실컷 놀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서로를 잡아먹는 불안. 그렇게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길들여졌다고 할 수 있으며, 언젠가 억눌린 것들이 폭발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둘째로 '안전'이라는 무적의 논리로 놀이를 제한합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위험해 보이는 행위들과 공간들을 제거해나갔습니다. 시도도 하기 전에 막혔습니다. 놀이터는 시시해졌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놀이터의 위험한 부분을 수리해주는 것이 최대한의 역할이 되면 좋겠지만 결국 아이들의 모험심까지 빼앗고 말았습니다. 놀다가 긁히는 상처가 날 수 있는 자유마저 사라지면서 겁쟁이가 되었고, 자기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셋째로 스마트폰을 사주었습니다. 유혹에 매우 취약한 아이들은 놀이를 포기하고 중독을 선택했습니다. 매달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중독을 장려하는 이상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중독이라는 단어는 좋은 곳에 쓰이지 않습니다. 대기업의 상술에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지고 말았습니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은 주위의 아이들마저 위험에 빠트렸고 지금은 온 동네로 퍼졌습니다.
넷째로 같이 놀 아이들을 없앴습니다. 놀 시간이 있어도 동네에 놀 아이들이 없다고 합니다. 동네로 아이들을 데려 오려고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결국 또 수업을 받게 됩니다.
이 네 가지 이유에는 공통된 부분이 있습니다. 놀이는 희생되었고 돈의 지출은 늘었습니다. 대학과 학원,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서 아이들의 놀이를 잡아먹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상층부에는 수능이라는 괴물이 있지요. 이 괴물은 고교 졸업시험으로 추락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견뎌내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예전에는 6교시가 끝나면 우선 놀았습니다. 가끔 교사와 상담도 하고 잘 모르는 내용을 좀 더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6교시 이후에는 아이들에게 자유와 놀이가 있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자유로운 학교로 알려진 영국의 서머힐 학교를 세운 A.S 니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 능력을 상실한 어린이는 영혼이 죽은 것이며, 그가 사귀는 다른 어린이들에게는 위험이 된다." 영혼을 점점 상실해가는 아이는 눈의 생기 또한 점점 사라집니다.
과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있고 너무 많은 것을 빼앗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놀이를 빼앗겼으니까요.
자유를 오롯이 많이 누려보아야 시간의 주인이 되지 않을까요? 복종만 하는 아이들을 기르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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