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순례길 5코스, 장안둘레길
동학순례길 5코스, 장안둘레길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11.26 09:19
  • 호수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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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정 미 사무국장
(사)동학혁명북접사업회
보은 동학농민회지
보은 동학농민회지

동학순례길 5코스는 1893년 동학민회가 열린 장안 중심으로 한 바퀴 둘러보는 코스이다. 삼가천을 중심으로 장안1,2리와 개안리, 서원리가 위치하며 많은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거리로는 4.5km이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놀며 걷다보면 2~3시간은 소요된다.  
5코스의 시작은 장안 마을비에서 시작한다. 북쪽으로 보습산의 옥녀봉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을의 유래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속리산 천왕봉의 줄기를 따라 옥황상제가 장막을 치고 옥좌에 앉아있는 형상이라 장막 장, 편안할 안을 써서 '장안(帳安)'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다. 지형적으로 전국의 중앙에 위치하고 보습산을 넘으면 백두대간 한남금북정맥과 만나 전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마을비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하면 동학안내판이 도로 옆에 있으며 이곳이 동학민회지이였다는 것을 유일하게 표현하며 논과 밭을 배경으로 서 있다. 여기서 북쪽 축사방향으로 가면 농수로와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걷다보면 장안이 펼쳐 보인다. 집회장소였던 돌담터, 중앙본부였던 대도소터, 그리고 200여 채의 농가와 400채의 초막이 삼가천 강변에 펼쳐져 있었던 127년 전 민회가 열렸던 당시를 그려볼 수 있다. 이 모습을 방정환하늘학교 학생들이 상상도로 그려 작은 안내판으로 세워놓았다. 함께 조성한 꽃길을 걸으며 장안2리 노인회관, 마을회관, 속리초를 지나 하개교를 지나 우당고택으로 향한다. 삼가천 중간에 돌과 흙이 모여 삼각주를 이룬 땅에 1910년대에 건축된 선(宣)씨 고가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중앙에 큰 기와집이 있다. 관선정을 지어 이웃의 영재들을 뽑아 사비를 들여 교육시키기도 한 집안이다. 
개안리 하계1교를 건너 삼가천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면 복해가든, 정이품송펜션을 지나 장내교를 지나 이제 서원리로 향한다. 서원리입구에는 상현서원이 있다. 충암 김정(1486∼1520)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처음에는 삼년산성 안에 삼년성서원으로 세웠고, 후에 국가 공인의 사액서원으로서 상현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672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우면서 성운·성제원·조헌·송시열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강당은 보은향교로 옮겨져 교육 장소인 명륜당으로 사용되었다. 다시 삼가천을 따라 장안으로 되돌아온다. 보습산 옥녀봉과 삼가천 넘어 개안리 벙어리봉에는 동학민회 당시 보초를 섰던 곳이다. 
장안은 1500년 이상 된 자연마을로 1893년 동학민회 당시에는 200여 채의 농가가 조성된 큰 마을이었다. 1894년 동학혁명이 기울면서 이두황에 의해 불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도 떠나고 작은 마을이 되었다. 1993년 충북대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장안리, 종곡리 현장조사 후, 학술대회에서 사적, 역사적 의미는 이미 실증 평가되었다. 하지만 보은 동학민회 전에 열렸던 공주집회, 삼례집회가 사적지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은 장안의 현주소와 비교된다.  
보은 동학민회는 동학의 하늘마음에서 시작된 만물에 대한 존엄성이 자기 존엄성을 깨닫고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국가 존엄성까지 확대하면서 국가의 주권이 국민인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민주정신의 씨앗을 싹틔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한 차원 더 나아가 동학의 민주정신은 우주적·보편적·공공성을 내포한다. 시대나 장소에 상관없이 어울리는 세계관이다. 이것을 놓치지 않고 먼저 지역사회가 동학을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그렇게 살아내길 바란다. 
(사)동학혁명북접사업회(약칭 동학민회)에서는 동학순례길 안내센터 (☎ 043-543-1893)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카페 '동학민회'에 상세한 지도가 안내되어 있다.  

상현서원
우당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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