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독립기념일 학생들 보은 민주역사 탐방
학생독립기념일 학생들 보은 민주역사 탐방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0.11.12 10:59
  • 호수 5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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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민회 주관, 동학순례지 걷고 학생들의 염원담은 솟대도 설치
학생독립기념일을 기념하며 민주역사지인 장안 민회지를 순례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학생독립기념일을 기념하며 민주역사지인 장안 민회지를 순례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고장 초중고 학생들이 보은의 민주역사현장을 탐방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동학혁명북접사업회(이하 동학민회)는 지난 11월 9일 제 91회 학생독립기념일을 기념하며 장안 민회지를 순례하고 동학공원으로 이동해 위령탑까지 민주역사지를 탐방했다.
이날 학생들은 위령탑에 올라 동학영령들의 염원과 학생들의 소원을 솟대에 담아 설치하고 묵념을 통해 동학영령들을 추모하기도 했다.
동학민회는 동학의 하늘마음에서 시작된 보국안민의 주체성이 민주정신으로 이어감을 공유했다고 밝히고 위령탑 주변에 설치했던 솟대는 학생들이 가져가 기념하게 했다.
그동안 동학민회는 장안리 사무국에서 보은행복교육지구 사업으로 방정환 하늘학교를 운영하면서 속리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1893년 1894년 당시 장안 동학민회를 그려 안내도를 설치하고 동학군들의 진로인 순례길 주변에 국화를 심고 제초작업을 하는 등 역사적 현장을 가꿨다. 마을작은도서관 기능을 하는 해월책놀이터에서는 방과후 돌봄, 보충교육 등도 진행하는 등 해월 선생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듬고 있다.
동학민회는 이밖에도 동학순례길을 조성해 안내지도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장안과 보은을 동학의 성지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동학민회 조정미 국장은 동학 보은집회 배경으로 음력 3월 10일 수운이 순도한 다음날인 1893년 3월 11일(음) 해월 최시형 선생이 동학지도부에 보낸 통유문에서 보은집회 명분으로써 '하나는 도를 지키고 스승을 존경하기 위함이요, 다른 하나는 나라를 바로 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계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라 선언했다고 꼽았다.
또 조 국장은 또 동학교단은 장내리 옥녀봉아래 200여 호로 이루어진 마을에, 길이 8칸 폭 6칸의 커다란 기와집인 대도소(1894년 3월)를 신축했다고 전했다.
교조신원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890년대 초반 '포' 제도가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포조직의 경우, 포를 총괄 지도하는 지도자를 일러 대접주라 불렀으며, 그 밑에 교장(敎長), 교수(敎授), 도집(都執), 집강(執綱), 대정(大正), 중정(中正)이라는 육임(六任)직책의 보좌진이 있었다.
육임은 대접주의 지시를 받아 포의 제반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이들이 업무를 진행하기에 포의 본부를 일러 육임소라 불렀다.
동학교단 최초의 육임은 1887년 음력 3월경에 보은 장내리,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거처하던 곳이다. 이곳은 1885년 음력 2월경부터 동학의 비밀포교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했다.
보은 장내리에 최초로 설치된 육임소의 핵심책임자는 6인 가운데 각 3인이 매월 15일씩 교대로 육임소에 상주하면서 동학의 교리를 강론하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접주 및 일반 도인들을 응접하고, 상벌하는 사무를 수행했다는 것.
조 국장은 접포 조직은 상하의 귀천, 남녀, 존비의 차별을 모두 철폐한 철저한 만민평등의 조직 즉, '평등공동체'였고 접과 포 조직 안의 모든 사람들이 유무상자(有無相資), 즉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돕는 끈끈한 '경제공동체'조직이며 민초들의 입장에서 서로 배우고 익히는 '학문〔道學〕공동체'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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