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기본소득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11.12 09:43
  • 호수 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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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 환 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학교에 있었던 일에 대한 언론 보도자료를 자주 내는 편입니다. 각 학교에서 수합된 보도자료들은 언론사에 배포가 되고 각 신문에 실리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 주제가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이 기본소득입니다.
아마도 '어린이가 무슨 기본소득?'과 같은 호기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호기심은 편견일수도 기대일수도 있겠죠.
저는 당연히 기대하는 입장입니다. 어린이도 그들의 수준에서 소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 있고 연필과 지우개를 살 수 있으며 때론 핫팩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치부하는 사람은 이런 행위들을 돈을 허투루 쓴다고 할 것입니다. 실은 어른들이 그렇게 하면서 말이죠.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돈을 사용할 때 꽤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학교에 매점이 생기면서 의문도 함께 생겼습니다. '왜 매점에 오는 아이들이 정해져있는 것 같지?'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용돈이 없거나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어리고 대부분의 물건들은 학교에서 구입해 주기에 용돈을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매점을 소유한 우리 학교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일은 어느 정도 공평한 수준의 소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 기본소득은 결국 매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 또한 정해진 퍼즐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지인은 중요한 퍼즐을 내밀어줍니다. “학교에 기부금 쓸 곳이 있나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죠. 그녀는 어린이 기본소득에 대하여 깊은 공감을 했고 학교 매점에 기부금을 기탁해주었습니다. 정확히는 그녀의 친구가 어머니의 이름으로 기부를 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회의에서 기본소득을 월요일에 받고 싶다고 결정했습니다. 한 주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맞이하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이왕이면 어른이 전해주는 것을 지양하고 싶었습니다. 혹시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까 하는 염려가 들어서 자신의 기본소득인 매점화폐 두 장을 가지고 가는 게시판을 복도에 만들었습니다. 각자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 매점화폐 두 장을 꽂아두는 것이 제 월요일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적인 입장입니다. 노동의 유무와 재산의 차이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습니다. 이상적인 제도인 만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나라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압니다. 확실한 것은 아이들은 나름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와서 수업에 참여하고 어울려 지냅니다. 이 정도의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죠. 실은 무척 적은 액수입니다. 그런데 효과는 큽니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출중합니다. 매점에 잘 오지 않았던 아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소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지 못하고 품고 있던 마음의 불편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학교가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면 이 제도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셈입니다.
계획적인 용돈의 사용 습관 등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효과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하고 잔소리 하는 것보다 겪으며 느끼는 것이 낫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현재 상황에서 살 수 없다면 지난 소비를 후회하거나 좀 더 모아야겠다고 생각하겠죠. 단, 담요 등의 기호물품은 개인용돈이 많은 아이들이 독점할 수 있기에 일주일에 한 개만 구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다른 불평등한 상황을 막기 위한 나름의 조치입니다.
누군가는 용돈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저는 용돈이라는 단어는 이 제도의 가치를 하락시킨다고 말합니다. 가진 자가 부족한 자에게 주는 용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지 않는 용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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