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민주주의
홍익민주주의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10.29 09:24
  • 호수 56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니스트 전 경 진
마로면 한중리

땅속작물을 수확하려고 삽질을 하다보면 땅속에서 '꽉' 하는 소리가 난다. 혹시 두더지라도 건드린건지 놀란 가슴이 팔딱거린다. 농사일하면서 두더지와 쥐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잡아버린다.
쥐는 농부의 숙적이라서 그런지 죽일지 살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생을 저지를 때가 많다.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고 죽은 녀석을 그러고 보고 있자면 또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것도 모종이나 곡식에 해를 입히던 놈이면 모르겠지만 어쩌다 지나가는 중이거나 땅에서 잠을 잤을 뿐인데 하필 나같이 흉폭한 인간에게 걸려 재수없이 죽임당하는 경우이니 참말로 미안하지 않겠는가? 너나 나나 다 살려고 그러다 벌어진 일이니 누구 잘못이 어디있는가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것이 다 먹고살려고 하고 그러다 먹히고 죽임당하는 데 태반이지만 어차피 너나 나나 한 운명이라고 위로해본다. 밭하고 떨어진 한켠 구석에 가만히 묻어주며 다음 생에서는 농가의 미움을 받지 않고 잘 살아보기를 빌어본다.  
그런데 이번에 꽉꽉 소리의 주인공은 겨울잠에 들어갔던 개구리였다. 겨울을 위해 흙냄새 좋은 우리 밭에서 자리잡았다가 생강수확하는 나에게 걸려 졸지에 집이 날아가는 봉변을 당한거다.
쥐와는 달리 내게 개구리는 마냥 그냥 이쁘고 기특한 녀석이다. 농사꾼에게 매, 개구리, 거미들은 지원군이자 존경하는 동지와 같다. 그런 녀석들이 밭이나 들에서 자주 들락거리고 자주 마주하게 되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농부가 없는 시간에도 해로운 벌레도 잡고 작물도 만져주는 든든한 녀석들이다. 비록 매는 개구리를 잡아먹고 개구리는 거미를 잡아먹는다해도 생명의 질서를 벗어나지 않는다.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농토는 생명의 밑천이 되어서 땅도 살고 농작물도 함께 살린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기적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것이 기후위기, 식량위기를 극복하고 탄소제로도 이루는 마법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제 농업은 하늘과 연결하면서 생명을 집결시키느냐, 아니면 스마트하게 하늘을 막고 흙의 영양력만 탈취하느냐라는 두 축으로 나눠서 극단화될 것이다. 나는 전자이다. 앞으로 세상이 아무리 두 쪽 나더라도 아날로그 세상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디지털로만 향해가는 농업을 거부할 것이다. 둘다 적당한 게 좋다. 무엇보다 우리 몸이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기 때문에 치우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연속의 농업이라는 길을 가면 거기 함께하는 생명체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농부, 시민, 소, 돼지, 풀, 벌레, 바람같은 것 모두가 함께 가는 도반이고 동지가 된다. 이렇게 다양성이 얼마나 풍성해지냐에 따라서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얼마나 농사를 잘 지을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이내 드러난다. 땅에 탄소도 고정시켜주고 지속가능하게 땅심을 유지하면서 순환할수록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보이지 않는 미생물 농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지속시켜야 할 농업이라고 믿는다.
인류의 전멸을 예고하는 환경위기로 인해 전세계는 2050년까지 탄소제로를 해야만 한다. 조만간 이를 감소시키지 않는 국가의 모든 상품에는 탄소세가 부과될 것이다. 이런 시기에 부각되는 정치사회사상으로서 '지구민주주의'가 제창됨을 살펴봐야 한다. 지구민주주의는 시장자본주의경제를 자연의생태적경제로 바꾸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사람의 말을 쓰지 못하는 모든 생명체에게도 그 존재 자체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는 모든 생명이 지구가족이고 천지의 자녀라는 동양 고대로부터의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있었다. 원래 고조선시대의 홍익인간사상에서 '인간'은 생물학적인 인류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고 신앙하던 시대에서 '인간'이라는 개념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야만 하는 모든 생명체를 일컫는 말이었고 생명의 이름뒤에 사람을 함께 붙여주었다.
아메리카인디언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홍익인간은 서구적 개념의 인본주의가 아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서는 자연과 어울리며 만물평등과 환경보전의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홍익민주주의로 거듭났으면 한다. 전지구적 민주주의와 함께 서로에게 이익을 더해주는 마음을 합쳐서 환경과 농업 모두 지금보다 더 좋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는 사이에 잠이 덜깬 개구리가 투덜거리며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 개구리에게 사과했다. 비닐을 걷고 땅을 건드리면 개구리뿐 아니라 뱀도 나오고 딱정벌레들도 나온다. 그래그래, 계속 미안하구나.
상강이 지났으니 확실한 겨울이 오고 있다. 된서리가 하얗게 내린 첫 새벽은 일년중 가장 엄숙하고 고요하고 깨끗하다. 추상같다는 표현처럼 하늘은 일체의 잡티도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차가운 숙살기운을 내어 표면을 덮어버리고 나면 비로소 어제의 생명계는 또다른 세상의 생명계로 접어든다.
중북부 산간 보은의 얼치기 설치기 농부인 나는 그제야 겨울을 넘어가는 작물들을 마무리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겨울을 채비하느라 분주하다. 단풍은 갈수록 붉어지고 하늘은 더욱 높아진다. 호흡을 깊게하니 폐부 깊숙이 선선한 바람이 내려가는 소리가 단전을 두드린다. 동지들과 산길을 함께 걸어봐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