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맛있는 떡을 만들어 온 강씨 방앗간
50년 동안 맛있는 떡을 만들어 온 강씨 방앗간
  • 심우리
  • 승인 2020.09.24 09:28
  • 호수 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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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 물려 받아 강씨 방앗간
운영중인 강호웅씨
50년 전통 강씨방앗간, 두번의 이사끝에 15여년전부터는 이곳에 자리잡았다.
50년 전통 강씨방앗간, 두번의 이사끝에 15여년전부터는 이곳에 자리잡았다.

옛날 방앗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무엇인가? 떡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방앗간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부터 기다리면서 앞 사람의 떡이 나올 때 군침 삼기며 부러워했던 것까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옛 방앗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대목이라 하여 쌀이나 쌀가루를 가지고 가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방앗간에서 반죽을 만들고 집에 와서 큰 소쿠리에 반죽을 두고 하나하나 손수 떡을 만들던 것도 이제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그저 전화로 미리 원하는 떡을 원하는 날짜에 준비해 달라고 예약을 하거나 필요할 때 와서 구매해가면 그만인지라 직접 쌀가루를 가져와 새벽부터 기다릴 필요도,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방앗간에서 뽑아온 반죽으로 손수 송편을 만들 일도 없어졌다. 여기 어릴 적부터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나 누구보다도 방앗간에 대한 추억이 짙게 안고 있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50년째 방앗간을 운영 중인 강호웅씨는 추석 연휴를 맞아 예약 받은 떡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다고 하자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앉아 옛 추억에 잠겨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둘 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머니때부터 사용하던 절구. 오래 사용해 갈라졌지만 가볍다며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방앗간 일을 돕기 시작한 5남매
강호웅씨 집에서 방앗간을 처음 시작한 것은 강호웅씨가 8살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불을 직접 때서 스팀을 만들어 떡을 쪘다고 한다. 기계로 찌고 떡을 뽑아내던 현재와는 달리 옛날에는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새벽 3시부터 와서 기다려도 그보다 더 일찍 온 사람들도 있었고,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려 오후나 저녁이 되어서야 떡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의 강씨 방앗간은 떡 방앗간이 아닌 국수 공장, 국수 방앗간으로 농사지은 밀을 가지고 오면 소면이면 소면 틀, 중면이면 중면 틀을 끼워 국수를 뽑아내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당시는 밀농사도 많이 져서 밀도 많았고 지금과 다르게 간식이랄 것이 국수나 떡이 전부라 면을 뽑으러 오거나 떡을 찌러오는 손님들이 줄을 100m 정도 서서 기다렸다가 떡을 찌고 면을 뽑아 갔다. 일은 많고 오래 걸리니 당시에는 일꾼이 5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일꾼이 5명이 되어도 너무 바빠서 끼니 챙길 시간도 없었다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면 떡치러 온 손님들이 만들어진 떡을 일꾼들한테 하나씩 떼어주면서 억지로라도 먹이면 그렇게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이렇게 바쁘다 보니 강호웅씨와 형제들도 어릴 적부터 방앗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었다. 당시 강호웅씨와 형제들의 역할은 잡일과 잔심부름. 4남 1녀가 너나 할 것 없이 방앗간 일을 도우며 자랐다. 친구들이 방과 후에 다들 딱지치기, 비석치기 하면서 놀 때 집에 와서 방앗간 일을 돕고 있노라면 부모님이 저녁 먹으라고 부르기 전까지 놀던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런 중에도 간혹 흑백 TV에서 하던 재미있는 연속극을 하는 날이면 형제들이 일은 해야 하지 연속극은 보고 싶지, 옹기종기 모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은 일을 하고 이긴 형제들은 들어가서 연속극을 보고 하는 재미로 살았다. 간혹 강호웅씨가 가위바위보에 져서 일 다 하고 들어왔을 때 연속극이 끝나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짜증내고 난리를 냈는지 모른다. 그렇게 방앗간에서 잔심부름이나 잡일을 도우며 자라다 정식으로 일을 배우고 시작한 것은 강호웅씨가 고등학교 때라고 한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송편을 예약 구매하는 손님이 많아 분주한 강호웅씨의 모습.
추석연휴를 앞두고 송편을 예약 구매하는 손님이 많아 분주한 강호웅씨의 모습.

#방황 끝에 다시 찾은 방앗간
세월이 흘러 형제들은 하나 둘 씩 독립해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보은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것은 형제 중 강호웅씨가 유일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생 때부터 정식으로 일을 배우게 되었다. 당시에는 80년대에 수해가 일어난 후라 집이 떠내려가고 이사를 해서 지금의 전통시장 주차장이 있는 부지에서 기름과 떡을 하는 방앗간을 했다. 그 때는 국수 면이 지금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슈퍼 같은 곳에서 팔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전처럼 방앗간에 농사지은 밀을 가져와 면을 뽑지 않게 되었기에 국수 공장이 타산에 맞지 않아 국수 공장 대신 고추를 빻거나 기름을 짜는 방앗간으로 업종을 바꿔서 운영했다고 한다. 그렇게 바뀐 방앗간에서 고등학생 때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해 대학도 들어가고, 군대를 전역하고 나와서는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 문제는 어릴 적부터 보고 배워오던 일을 계속해 가업으로 물려받는 것은 추호도 싫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강호웅씨는 몇 년간 방앗간을 떠나 이런저런 일을 시도해봤다. 사업도 해보고, 스포츠 분야 일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적성해도 안 맞는 것 같고 잘 풀리지도 않아 결국 다시 방앗간으로 돌아온 강호웅씨. 그렇게 가업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다.

#옛 방앗간의 모습은 추억이 되고...
지금의 위치로 방앗간이 이사 온 것은 약 15년 전, 이전 방앗간을 운영하던 부지에 전통시장 주차장이 들어서면서라고 한다. 이사 오면서 부터는 지금의 강씨 방앗간처럼 떡집으로 바꿔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방앗간을 하시던 부모님께서는 힘이 부쳐 조금씩 일손을 놓기 시작하셨고, 강호웅씨가 사장님으로서 강씨 방앗간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약 12년 정도 되었다고. 강호웅씨가 사장님으로 강씨 방앗간을 운영할 때쯤에는 이미 예전 방앗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떡을 찌기 위해 불을 뗄 필요 없이 기계를 돌려 떡을 찌고, 사람들이 새벽부터 찾아와 줄 서서 기다리고 일꾼 여럿이서 끼니 챙길 틈 없이 바삐 움직이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먹을거리도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이 먹거리로 떡을 찾는 일도 드물다. 명절이 되어도 대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는 일 또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고 지금의 명절 떡은 그저 간략하게 전화로 예약하거나 매장에서 즉석에서 사가는 것이 전부다. 가끔 옛 방앗간을 기억하고 떡을 쪄달라며 쌀가루를 가지고 찾아오시는 어르신 몇 분만이 예전의 방앗간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그렇다한들 강씨 방앗간은 아직도 바쁘게 돌아간다. 새벽부터 나와 떡을 찌고 찐 떡을 진열해 두고, 예약 받은 떡은 시간에 맞춰 포장해 둔다. 명절이 되면 더 분주해진다. 추석이 다가오면 송편을, 설에는 가래떡을 찾는 고객들 덕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진다. 얼마 전까지는 송편은 직접 손으로 빚어서 내곤 했지만 이제는 강호웅씨 부부도 힘에 부쳐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도 부모님 돕겠다고 나와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딸이 강호웅씨 부부는 고맙다고.
강호웅씨가 8살적에 처음 문을 열었던 강씨 방앗간은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58세가 될 때까지 운영되고 있다. 비록 나이가 들고 떡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강호웅씨와 평생을 함께 해온 강씨 방앗간은 오늘도 보은 사람들이 맛있는 떡을 먹을 수 있도록 꼭두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문의 : 0507-1353-2838
주소 : 보은읍 삼산로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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