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소환, 그 후
주민 소환, 그 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9.17 09:26
  • 호수 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 성 수
전 주민소환 청구인 대표

주민 소환이 시작되고 두 달 동안 군민의 뜻이 모여진 서명부를 선관위에 제출하고, 이어진 총선 기간 동안 주민 소환의 시계가 한시적으로 멈추었다. 두 달 뒤 다시 초침을 움직이면서 주민 소환에 대한 군민들의 염원이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나리라 믿었다. 그러나 얼마 뒤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에서 정상혁 군수가 서명부 정보공개를 청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피식 코웃음이 나왔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주민소환 대상자로 군민의 심판을 기다려야하는 당사자가 서명부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하다니 어불성설이 아닌가했다. 그리고 그 때는 믿었다. 선관위에서 서명부 정보를 공개할 리가 없다고.
명색이 지자체장이라는 군수가 어떻게 그렇게 상식도 없는 일을 부끄럼 없이 할 수 있을까. 그 몰염치에 다시 한 번 주민소환의 당위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군청으로 달려가 군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면담은 거부한 채, 왜 정보공개를 요청했는냐는 질문에 이유를 말해줄 수 없다고, 그것를 말해 줘야할 '권리'는 없다는 대답만 하고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군수가 서명부 정보 공개를 청구한 저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군민들을 가려내 협박과 회유로 주민 소환을 방해하고 자신의 직위만을 보전하려는 것이다. 보은군민들은 이런 군수를 지난 10년 봐왔고, 앞으로 2년을 더 지켜봐야한 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선관위의 결정을 기다렸다. 서명부 정보공개는 불가하다는 의견을 내었으나 법 규정과 선례를 들어 정보 공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거행위의 일종으로 주민소환 업무를 진행하는 선관위에서 투표행위와 같은 개인의 정치적 의사가 오롯이 포함된 서명부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존재 이유를 망각한 처사가 어닐 수 없다.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행정심판도 기각이 될게 뻔하였다. 남은 것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내는 일 뿐이었다. 정보공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 총선이 끝나고 다시 진행된 주민소환 절차는 서명부 확인작업과 열람기간으로 이어졌다.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열람이 시작되자 첫날부터 일부 이장들과 군수측 관변단체 등에서 동원된 서명부 열람 인원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이어졌다. 이렇게 까지 비열하고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군수 주민소환이라는 대의명분도 선량한 서명인들의 불이익에 우선 할 수 없는 일이라 입술을 깨무는 심정으로 주민소환을 철회하고 주민소환을 통한 군민의 심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주민소환을 철회한 만큼 군수도 정보공개 청구를 철회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정상혁 군수에게 기대하기엔 너무 먼 이야기였다. 기어이 서명자들을 색출하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은 군수에게 무슨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제 남은 것은 법원의 시간이었다. 다행이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져서 당장 서명부 정보가 군수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일은 막았다. 두 번의 심문 기일이 지나고 지난 주 선고가 나왔다. 정보 공개 결정을 취소하라는 우리의 청구가 받아들여진 판결이었다.
요지는 간단하였다. 서명부는 단순한 개인정보가 아니라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표시된 것으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공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서 선관위에서 항소하지는 않을 것이라 주민소환 그 이후 서명부 정보공개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찍기를 기대한다. 다만 이번 행정소송에 보조참관인으로 참여한 군수 측에서 주민소환청구인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서명을 받았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물을지 고민하고 있다.
 남은 군수의 임기, 긴 인내의 시간이 될 것 같아 서글퍼진다. 보은은, 보은 사람들은 언제가 되어야 제대로 된 군수를 가질 수 있을까. 언제까지 군민의 뜻을 무시하고 독선을 버리지 못하는 군수를 지켜보아야 할까. 주민소환이 철회되었다고 해서 군수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과 군정에 대한 비판과 감시까지 철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