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五賊)
오적(五賊)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9.17 09:25
  • 호수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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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이 만 동
조자용민문화연구회 대표, 도화리

"(전략......)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죡/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후략......)"
시인 김지하가 1970년 '사상계(思想界)' 5월호에 발표한 장편 담시(이야기조의 시)(譚詩)', '오적(五賊)'의 도입부이다.
'오적'은 당시 권력층인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乙巳五賊)에 빗대어 풍자한 시이다.
시인은 그들의 부정부패와 비리의 실상을 판소리 형식으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당시 군부 정권 시절에는 경제개발과 산업화라는 명목과 독재 권력자의 비호 아래 그들의 패악질이 보란 듯이 경쟁적으로 자행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잘못에 대해 한낱 시인의 풍자시로밖에 저항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시인은 그만한 일로 옥고를 치루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나 민주화도 이룩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지금. 아직도 그들은 버젓이 각종 패악질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그들 중에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교묘한 방법으로 합법을 가장하여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전세로 살면서 서울 강남에 있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을 사들여 수십억 원을 치부하고서도, 입으로는 부동산 안정을 부르짖는 개국회의원들.
과거에는 각종 비리와 심지어는 밀수를 해서까지 돈을 벌더니, 이제는 국민 덕분에 얻은 그 엄청난 재산들을 세금 몇 푼 내지 않고 위법적으로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사기꾼 재벌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병사들의 복리후생비를 빼돌리고 군사장비의 부실 비리를 저질러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똥장군들.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자신의 부동산과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자신의 지위에서 얻은 정보로 주식 투자를 일삼는 장사치 같은 고급공무원, 장차관들.
국민의 안위와 복리에 힘써야 할 자들이 오히려 법과 제도, 그리고 자신들의 지위를 통해 얻은 정보를 오직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여 재산을 불리고 있으니 그들을 어찌 지금도 오적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아직도 김지하 시인이 풍자한 오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오적에 더해 이제는 우리가 양심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었던 언론과 판검사마저 그들의 카르텔 속에 합류, 재벌들과 담합하고, 국민의 뜻과 정의를 왜곡하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저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면 촛불을 들어 대통령도 탄핵한 시민들 아니던가? 우리 다함께 두 눈 더욱 크게 부릅뜨고 그들의 담합과 사리사욕에 눈먼 부정한 행위들을 감시하고 엄중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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