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보은시장 역사의 만물상점 대원상회
53년 보은시장 역사의 만물상점 대원상회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0.09.10 09:22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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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상회를 운영하는 김창구·정모 부부의 모습.
대원상회를 운영하는 김창구·정모 부부의 모습.

오래된 가게는 그 자체가 유산이자 문화다. 오래 살아남은 가게나 기업은 세월이 켜켜이 쌓인 것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 골목 구석구석마다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옛것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 곳을 보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오래 된 것 속에 미래를 품고 있으며 오래된 미래의 현장들이다. 오래된 가게는 분명히 보은의 역사이다. 그 기억이 잊혀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긴다.
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고 산업화를 맞으며 12만명에 육박했던 인구가 도시로, 도시로 빠져나가 겨우 3만2천여명에 불과한 보은같은 소지역에서 오랫동안 한 업종을 오래토록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다. 유행도 달라졌고 시대도 달라졌고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는 세파에도 묵묵히 동일 업종으로 가게를 계속 이어가는 자체가 힘든 것이 요즘이다.
그런 상황에서 53년간 한 업종의 장사를 하며 보은시장의 역사를 쓰고 있는 대원상회는 그 업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시장 주차장으로 쓰겠다며 보은군이 건물을 매입해 상가가 없어진 중앙패션타운 바로 이웃 건물로 가게를 옮겨 장사를 계속하고 있는 대원상회를 찾았다. 가게 53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보은에 빈 가게가 많은 것 같지만 내 맘에 쏙 드는 가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중앙패션타운을 철거할 때만 해도 그 안에서 장사를 했던 상인들이 다 어디에서 장사를 할까 많이 궁금했다. 시내 주변에 가게를 마련할 것 같은데 빈 가게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들 멀리 가지 않고 중앙패션타운이 있던 자리 바로 옆에 오랫동안 방치했던 가게를 리모델링해서 그 자리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죽었던 곳이 살아나고 새로운 거리가 형성됐다. 대원상회도 주변에 가게를 마련해 이전했다.

53년 보은시장의 역사를 가진 대원상회의 모습.
53년 보은시장의 역사를 가진 대원상회의 모습.

#5공주 중 맏딸, 아버지의 가게 물려받아
모자, 가방, 허리띠, 속옷, 양말, 옷 등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파는 대원상회는 만물상회나 마찬가지였다. 53년 역사, 반백년을 훌쩍 넘겼지만 패션 가게여서인지 역사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현대적이었다. 요즘 시대에 맞는 디자인과 트렌드 등이 반영된 물건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주인의 성격이 느껴질 정도로 종류별로 차곡차곡 정리된 것이 눈길을 끈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취재하는 동안에도 손님들이 들어와 사고싶은 물건을 금방 집어들었다.
또 이웃에 거주한다는 주민이 놀러와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가게를 운영해와 주변의 주민들에게는 대화도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사랑방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원상회의 주인은 김창구(75)·정모(73) 부부다. 한자어로 큰 대(大) 으뜸 원(原)자를 쓰는 대원상회는 원래는 정모씨의 친정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다.
슬하의 딸만 다섯인 집안의 맏딸이었던 정모씨는 김창구씨와 결혼하기 전인 스무살 아가씨 때부터 장사를 했다.
아버지가 했던 가게를 물려받은 정모씨는 붙임성 있는 자세로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물건의 쓰임 등을 잘 설명하는 등 장사를 참 잘했다. 그 덕분인지 아버지 때부터 찾았던 단골을 놓치지 않았고 정모씨가 가게를 맡은 이후 새로 가게를 찾는 손님이 늘어 대원상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또 자신이 취급하는 업종에서는 크게 성해서 으뜸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은 대(大)원(元)이라 정한 간판도 내걸어 가게홍보도 하고 손님들이 쉽게 가게를 찾을 수 있게 했다. 생각하면 정모씨는 나름 경영능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나름 갖고 있는 경영능력은 아버지가 일찍 작고하는 바람에 짊어졌던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도 덜 수 있었다. 정모씨는 아버지가 남겨준 큰 유산인 가게를 잘 경영해 가족들에게 든든한 생계버팀목이 되어주었다.

#80년 수해로 큰 피해 성실운영으로 극복
결혼하기 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대원상회는 시집와서도 이어갔다. 당시 보은군인구가 12만명에 육박했고 장날이면 시골 구석구석에 사는 주민들이 나와 농산물도 팔고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기 위해 보은장으로 몰려들었다. 당시는 소비인구가 많았지만 물건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양도 적어 희소성에 의해 물건은 불티나게 팔리는 상황이었다. 대원상회도 장사하는 것이 재미가 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보은군공무원과 농지개량조합장을 지낸 남편 김창구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셋의 뒷바라지도 다하면서 가정의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해줬다.
그리고 군유지에서 개인에게 불하했다가 지금은 주차장 조성을 위해 보은군이 다시 매입해 철거한 중앙패션타운 자리의 가게도 구입했다.
기존의 낡은 가게를 허물고 1979년 건물을 짓고 한 해 장사를 했는데 1980년 8월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동다리 인근 둑이 터져 하천으로 흐를 빗물이 장터안으로 밀려들었다. 가게물건 챙길 새도 없이 건물 2층으로 피신했다. 이미 가게 안으로도 어른 허리춤 높이만큼  물이 차올랐다. 살림살이들이 물에 떠내려갔다. 밥솥, 장독, 냉장고 등 누구네 것인지 모를 많은 물건이 힘없이 둥둥 떠내려갔다.
나중에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진 후 가게 안은 뻘처럼 진흙이 쌓였고 남아있는 물건도 쓰레기가 되었다. 타격이 심했다. 엄청난 규모의 외상장부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동안 청춘을 바치고 먹을 것 안 먹고 일구고 꾸려온 가게인데 하는 생각에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든 물건을 전부 새로 구비해야하는 상황이어서 다시 일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일. 다시 물건을 구입해 가게 진열대를 채웠다. 새 기분으로 장사를 했다.
그때 크게 수해를 입은 기억이 있어서 요즘도 TV에서 수해 입은 곳이 나오면 내 일같이 안타깝고 애가 탄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힘든 상황이 지나가면 좋은 상황이 또 생기듯 수해가 난 이후 장사가 잘 됐다.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서로 사주고 팔아주고 도와준 상황이 됐던 것이다. 살아있는 공동체 정신을 경험한 것.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청산, 화령에서도 찾아와
잡화점, 만물상회이다보니 대원상회를 찾는 손님은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청산, 화령에서도 찾는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을 생각해서 대원상회 김창구·정모 부부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문을 열었다. 멀리서 왔는데 가게 문이 닫혀있으면 그것처럼 낭패가 없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손님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였던 것이다.
그러다 점점 인구가 줄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도 줄어 매달 17일을 휴장일로 정했다, 그 이후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쉰다. 보은에 사람이 줄고 있는 것. 보은장의 현실이다. 자주적인 지역이 되려면 지역주민이 장을 이용하면서 상권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구가 줄어서 그 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김창구·정모 부부가 대원상회를 운영한지 53년. 특히 정모씨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대원상회. 그들은 오전 9시경 가게문을 열고 매일매일 가게를 찾은 손님에게 고마워하고 저녁 6시30분경 가게 문을 닫으며 또 내일을 기대한다.

60년된 주판으로 아직도 계산을 하며 꼼꼼히 가게 운영을 하고 있다
60년된 주판으로 아직도 계산을 하며 꼼꼼히 가게 운영을 하고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80년 돈통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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