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웃음이 꽃을 닮았나요?
"제 웃음이 꽃을 닮았나요?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8.13 09:32
  • 호수 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은 사람, 오덕순 어르신 (1948년생, 73세)
그리운 엄마를 꽃밭에 한송이 두송이 마음으로 심고 있는 오덕순 어르신.

엄마, 라는 말을 불러보지 못해 가슴이 아려요. 꽃들도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하는데, 엄마는 왜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일찍 떠나셨어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그 중에 엄마를 일찍 여읜 상처만큼 큰 것이 또 있을까? 자식을 먼저 보낸 상처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을까? 이별은 아무리 많이 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영원한 슬픔이다. 여기, 그 슬픔의 한 복판에서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계신다.

엄마,
엄마, 가만히 불러보니 마음이 아려요. 
이렇게 불러본지 70년도 넘었으니, 참 그립고 아픈 이름이네요. 사실은 많이많이 부르고 싶었어요. 남들은 쉽고 정겹게 외치는 이 말이 제게는 너무나도 그립고 아픈 이름이었어요. 제가 젖먹이 때 돌아가신 엄마는, 제게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으셨거든요. 저는 엄마 이름도, 얼굴도, 모습도, 목소리도, 냄새도 아무것도 몰라요. 웃음도 눈물도 한숨도 발자국도 몰라요. 그 모든 것이 마냥 그리움으로만 남았어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먼 세상의 이야기, 남들만 가지고 있는 사연으로 멀어져 가버렸기 때문이에요.

#칠십 넘어서 저는 학생이 되었어요.
저랑 비슷한 또래와 언니 같은 할머니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하고 노래하고 살아요. 점심때는 맛난 것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요. 어릴 때 친구들 학교 가는 것 보면 무척 부러웠는데, 이제야 학생이 되었으니 인생은 길고도 재미난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글을 잘 익혀서 제 살아온 이야기도 써 보고 싶고, 꽃에 대한 것도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요. 제가 꽃을 아주 아주 좋아하는데 이름을 잘 모르겠어요.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이름이 있고, 식물도 저마다의 이름으로 불리잖아요. 저는 어렸을 때 엄마를 여의었으니 엄마가 다정히 불러주는 이름을 듣지 못하고 자랐어요. 아버지는 새엄마를 맞으셨고 두 분이 제 이름을 사랑스럽게 불러주시는 것도 듣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요즘은 선생님도, 같이 공부하는 친구와 언니들도, 제 이름을 불러줘요. 이름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꽃들도 이름을 사랑스럽게 불러주면 참 좋아 할 것 같아요. 꽃 피운다고 비 맞고 바람 맞고 땡볕에 서서 애쓰잖아요.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 준다면 더 활짝 꽃을 피우지 않을까요? 오늘도 몇 가지 꽃 이름을 배웠어요. 꽃대에 작은 등불처럼 조롱조롱 맺히는 섬초롱꽃, 꽃송이가 애기 얼굴만큼 커다랗게 핀 것은 모란, 하늘하늘 활짝 펴서 참 아름다운 양귀비, 붓처럼 생겼다고 붓꽃이라 한대요.

엄마,
오늘 신문사에서 나온 작가님이 저보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서는 '엄마'라고 불러줍디다. 그이도 나처럼 엄마를 일찍 여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이가 나보고 '엄마, 우리 꽃밭에 사진 찍으러 가자'라고 하데요. 둘이 계단을 내려가서 주차장에 활짝 핀 꽃들을 보며 사진을 찍었어요. 하얗게 솜처럼 퍼진 자잘한 꽃은 안개꽃이래요. 손톱만한 장미꽃도 있대요. 그 꽃을 보고 만지며 사진을 찍고 보여주는데, 내 모습이 맞나 싶게 예쁘더군요. 아름다운 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면 꽃을 닮게 되나 봐요. 저는 그렇게 꽃밭에서 꽃을 가꾸며 꽃처럼 예쁘게 살고 싶었는데 제 삶을 되돌아보니 가시밭길을 걸어온 것 같아서 자꾸 눈물이 나요.

엄마,
다섯 살이 되던 해 엄마를 보내고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나 혼자 자란 것 같은 설움이 생겨요. 어린 우리 셋을 두고 엄마는 어찌 눈을 감았을까요? 남의 집 살이를 할 때 사모님이 아들을 낳았어요. 사모님이 나더러 동생을 업어주고 챙기라고 했지요. 겨우 다섯 살이 나에게...하루는 친구들과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놀다가 저녁이 되었는데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요. 언덕에 숨어 있다가 찾으러 나온 아저씨께 들켜서 꾸중 듣고 회초리로 맞았어요. 그 때 입으로 '엄마, 엄마'를 얼마나 불렀던지 나중에 어른이 되니까 엄마란 말이 싫어졌어요. 아이일 때는 엄마가 젤 좋고 믿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시집 와서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면서 한 시도 떼 놓지 않고 키웠어요.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눕히고, 따뜻한 밥에 국도 맛나게 끓여 먹였어요. 엄마 가뭄이 들면 난중에 힘들게 살까 봐서요.

시집이라고 왔더니 아무 재산도 없는 가난한 집이었어요. 남의 품삯일도 하고, 노동일도 하며 살았어요. 남편은 간암을 앓다가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다들 어려운 시기를 지나던 그때 저도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엄마로 아내로 사는 일들이 힘들었지만 하다보니 20년이란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가더만요. 월급 받아 아이 셋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뒷바라지 했어요. 고단해도 당당했던 건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성실했기 때문 일거에요.
우리 큰 딸 김경희는 사위 거들어주며 카센터를 하고 있어요. 아들 홍만이는 청주 시내에서 정육점을 하구요, 막내 홍찬이는 보은에서 꽃집에서 일해요. 저는 막내 가게에 자주 가요. 어떤 날은 꽃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하지요. 이상하게 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그냥 좋아요.

엄마,
'꽃아, 너는 어쩌면 이렇게 사람한테 사랑 받으며 사니? 참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꽃도 좋아서 웃어줘요. 저는 또 '나도 너처럼 예쁘고 곱다는 소리 들으며 살고 싶다'라고 말하면 꽃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덕순씨도 아름다운 할머니세요.' 사실 이 말은 오늘 저한테 사진 찍어주고 제 이야기를 써 주신 작가님이 해 주신 말이에요. 저보고 꽃처럼 아름답다고 하네요. 제 웃음이 꽃을 닮았다고 하네요.

엄마,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아요. 제게도 이런 날 있으니 칠십 넘게 살아온 날, 이제는 꽃길만 걸으렵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더 열심히 배워서 제 손으로 엄마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요. 맞춤법이 틀리고 문장이 이상해도 엄마는 그저 어여삐 봐 주실 테죠.
엄마, 그리운 엄마를 꽃밭에 한 송이 두 송이 마음으로 심으렵니다.
여름 땡볕에 물기가 마르고 장마에 꽃잎을 떨구겠지만 그래도 곱게 피어날 거 에요.
어느 날 문득 유난히 어여쁜 꽃이 나를 보고 웃는 다면 엄마라고 생각할게요. 그립습니다.
김경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