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외면의 역사를 함께한 구티리의 산외연쇄점
산외면의 역사를 함께한 구티리의 산외연쇄점
  • 심우리 기자
  • 승인 2020.07.30 09:15
  • 호수 5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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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에 시집와 산전수전
61년간 장사로 가정일군
여장부 양경순씨
연쇄점이 여전히 잘 운영되어 힘들다고 말하지만 매일 같이 웃는 얼굴로 연쇄점을 지키고 있는 양경순씨의 모습.
연쇄점이 여전히 잘 운영되어 힘들다고 말하지만 매일 같이 웃는 얼굴로 연쇄점을 지키고 있는 양경순씨의 모습.

산외면에는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이발소부터 식당까지 30~40년은 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 오래된 골목의 느낌을 줄 정도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월요일 오후여서 인지 골목에 한적함까지 느껴져 시골의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곳은 형형색색의 화분들로 밝은 느낌을 자아내는 산외 연쇄점. 연쇄점 안으로 들어서니 산외면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다. 그렇게 둘러보고 있자니 가게 안쪽 방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오시는 양경순 어르신. 올해 91세임에도 마치 80대 같은 정정함을 유지하고 계시는 양경순씨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들어와 앉으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산외면 입성
양경순씨는 보은에서 꽤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양경순씨의 아버지가 보은에서 사업으로 성공하셔서 입고 먹는데 부족함이 없었다고한다. 작은아버지 또한 삼산에서 고무신 도매를 했는데 장사가 잘 되었다. 
양경순씨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시골이 싫었는지 청주나 대전으로 떠날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라 열여덟이 되던 해에 아들 선 때문에 오신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양경순씨가 마주한 시어머니의 첫인상은 마치 귀부인을 뵙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어머니께 푹 빠져 시집을 왔다고. 시집와서 보니 시아버지 농회장(조합장)으로 일하시는 공무원이셨고 남편은 육군 소위에 수송관으로 일하고 있어 시집와서도 부족함이 없이 살아왔다. 30 즈음 돼서 남편이 전역을 하고 같이 차린 곳이 산외 연쇄점이었다. 그때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든든한 지원으로 철물점도 하고 고무신도 팔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산외면에 점포랄 것이 없어 장사가 잘 되었다. 심지어 연쇄점이 산외면에서 밖을 나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위치에 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산외면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산외연쇄점의 모습.
산외면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산외연쇄점의 모습.

 

#양경순씨에게 찾아온 비극
시아버지께서 면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낙선했고, 전 재산도 날렸다. 당연히 연쇄점도 넘어가고 집도 넘어가 재기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밑천을 대주셨지만 부족했다. 
그러던중 작은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작은아버지가 하시던 고무신도매점을 물려 받아 양경순씨 부부가 운영을 했다. 그렇게 9년 운영하다 청주에 나가 매달 4천원의 월세를 내고 슈퍼 장사를 하며 살았다. 형편이 어려우니 자식들 공부도 고등학교까지 밖에 시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만 커졌다고. 
그래도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둘째 아들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소령까지 지내고 셋째 아들은 고졸임에도 대학 나온 사람들과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는 등 잘 자라 양경순씨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워 했다. 
하지만 양경순씨에게는 이러한 소소한 행복도 허락되지 않는 듯 했다.

산외면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산외연쇄점의 모습.
산외면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산외연쇄점의 모습.

 

#다시 일어선 양경순씨와 산외 연쇄점
남편도 잃고 한전 과장이었던 둘째 아들, 육군사관학교 장교였던 셋째 아들 등 아들 셋 모두를 잃었지만 양경순씨에게는 남은 두 딸은 살아가야할 희망이었다. 
다행히도 큰 딸이 부유한 집으로 시집을 갔고 양경순씨의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청주에 나가 슈퍼를 운영한지 9년 만에 다시 보은의 산외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돌아온 산외면이었다. 
시아버지가 면장 선거에 출마하셔서 파산한 이후에 보은으로 나가 9년, 청주로 나가서 9년을 살다가 온 것이니 18년 만이었다. 
돌아온 양경순씨는 방 한 칸 얻어 고무신 가게를 차려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고무신 가게가 산외면에서 5일장이 열리는 장터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 장날마다 사람들이 많이와 장사가 잘되었다. 게다가 산외면의 사람들이 감사하게도 돌아온 양경순씨 가게에 많이 찾아와주어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다.
집 맞은편에 위치한 산외초등학교 다니는 재학생 8, 900명이 이용하는 전방이기도 했다. 장사가 얼마나 잘 됐을지 짐작이 간다. 
그후 집도 짓고 현재의 가게를 인수해 고무신 가게와 슈퍼를 같이 하기 시작했다. 
파산했을 때 넘어갔던 집도 찾고 빚도 다 갚아 살만해질 즈음에 수해가 크게 일어나 집이 망가졌지만 양경순씨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건축회사에 다니는 사위가 자기 돈으로 집을 지어주겠다고 해도 양경순씨는 거절했다. 동생이 자재를 대주어 수리한 집에서 살다가 충분한 돈이 생겼고 그 돈으로 산외 연쇄점건물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산외 연쇄점은 장사가 잘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고무신 가게를 조금씩 접기 시작해 현재는 고무신을 팔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낫이나 고기잡는 그물 등 슈퍼에서 파는 음료나 과자, 라면 외에도 다양한 것을 판매하고 있다. 
연쇄점 안쪽의 작은 방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가족들의 사진과 예전에 쓰던 금고통이 오랜 세월 속 양경순씨의 역경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연쇄점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오랜 세월 연쇄점과 함께한 양경순씨는 가게보는 것이 지친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한결같이 연쇄점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양경순씨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양경순씨에게 산외연쇄점은 운영하고있는 가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가족 같은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문의 : (043)542-4138
주소 : 산외면 구티1길 22

연쇄점 안쪽의 작은 방에 있는 골동품같은 금고통은 연쇄점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연쇄점 안쪽에 잘 정돈된 진열대의 모습. 먼지 하나 없는 진열대의 모습에서 주인장의 깔끔함이 엿보인다.
낫이나 고기잡는 그물 등 연쇄점에서는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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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경 2020-08-01 10:58:07
할머니 ~ 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앞으로늘 행복한일만 가득하실거에요

구혜주 2020-08-04 16:42:54
증조할머니 사랑해요~~♡^^

구혜주 2020-08-04 16:37:40
증조할머니 건강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