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면과 50여년 세월을 함께 한 서울상회
마로면과 50여년 세월을 함께 한 서울상회
  • 황민호, 윤종훈 기자
  • 승인 2020.07.02 10:35
  • 호수 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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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장사하다 매형 도움으로
옷가게를 연 이택호씨

보은 사람들 취향에 맞는 옷을
직접 공수해 판매
마로면과 50여년을 세월을 함께한 관기리 삼거리에 상징 같은 서울상회.
마로면과 50여년을 세월을 함께한 관기리 삼거리에 상징 같은 서울상회.

 

면 지역에서 옷가게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수요가 많이 사라지면서 문을 가장 먼저 닫는 곳 중의 하나가 옷 가게이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유행이고 패션인지라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보은읍이나 대전, 청주 등지에 나가 옷을 사기 일쑤다. 낡은 간판에 잘 어울리지 않는 '서울상회'라는 글자가 세월을 머금고 박혀 있다. 밝지 않은 조명 아래 화려한 꽃 무늬가 이채롭다. 30년도 넘었음직한 낡은 책상과 의자가 반들반들하다. 살림집이 바로 옆에 있고 조그만 마루에 걸터 앉아 화투장을 끄집어내어 세월을 낚고 있는 그에게 '일'이란 단지 돈을 버는 것 그 이상으로 보였다. 인구는 자꾸 줄어들고 매출은 계속 떨어질 터였다. 여든이 넘은 몸은 여전히 성치 않았다. 수년 전 한 차례 위암수술을 겪고 나서 몸무게게 10여 킬로그램 줄었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자리를 지키는 것은 어떤 숙명인지도 몰랐다. 서울상회는 마로면 관기리 삼거리에 상징 같은 존재이다.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중앙상회보다 더 역사가 오래됐다. 중앙상회가 그러하 듯 여든살 이택호씨도 젊은 날 보따리 장수로 일을 시작했다. 대전에서 옷을 떼다 파는 보따리 장수였다. 그러다가 터를 잡았던 것. 번듯하게 서울상회란 간판을 내 걸었다. 아무래도 '대전'보다 '서울'이 조금 더 먹혔던 시대였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서 왔다고 하면 약간 더 쳐주고 우러러보는 그것들이 여전히 뿌리 깊다.
이택호씨 부부에게 일이란 어떤 정체성인지도 몰랐다. 퇴직하고 일이 없어지면 급속도로 늙어가는 것처럼. 경로당 가지 않고 일어나서 무언가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을 지탱해주는 또 다른 '복지' 인지도 몰랐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지도 몰랐다. 가끔 대전으로 마실 나가서 옷을 떼어다 파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테고, 여전히 활동가능하다는 건강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 바빠도 골치지만, 너무 손님이 안 와도 걱정. 마실 오면서 하나둘씩 사고 파는 재미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옷을 고르는 눈매와 안목이 중요하다. 잘못 사왔다가는 재고로 남아 처리가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은 마로면 주민들의 패션감각에 민감해야 한다. 그것은 이미 반백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택호씨가 체득해왔다.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하니 자세를 고쳐 잡는다. 
조곤조곤 세월이 묻어난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한다. 

할머니들에게 인기있는 알록달록 꽃무늬 옷들이 가게 한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인기있는 알록달록 꽃무늬 옷들이 가게 한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할머니들에겐 알록달록 꽃무늬 패션이 인기
알록달록 밝고 화려한 색상을 뽐내는 옷들이 가게 진열대에 줄줄이 널려있다. 꽃무늬들이 많다. 점점 흑백이 되어가는 몸을 컬러풀하게 해주는 옷들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옷 뿐만이 아니라 가방과 모자도 즐비하다. 양말과 덧신, 속옥까지 몸에 걸치는 것은 다 있다. 이 곳에 오면 농촌, 아니 마로면의 패션을 읽을 수 있는 마로 패션 일번지이다. 
가게 주변에 낡은 간판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자동차들은 어디론가 느릿하게 지나간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잔잔한 마을 분위기처럼 비슷한 속도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평온한 기운마저 주는 마로면 관기리에 옷 장사를 이 집만큼 오래 한 곳도 드물 것이다. 수수한 옷차림의 이택호(80)씨는 58년째 '서울상회'를 지키며 보은 사람들이 입을 옷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택호씨는 보은읍에서 보따리 옷 장사를 하다 22세에 마로면에 정착해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 매형이 대전 중앙시장에서 옷 도매를 해서 그곳에서 의류를 가져왔다고. 
탄부면 구암리가 고향인 이씨는 관기초등학교(42회), 보덕중학교(3회) 졸업생이다. 
살던 집과 초등학교의 면은 달랐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갈 수 있었다. 당시 학교 건물이란 게 따로 없어서 담배창고에서 배웠다고. 고등학교는 진학하지 않고 보따리 장사를 하기 까지 집안 농사일을 도왔다. 오늘날 교육격차는 여전히 해소되고 있지 않지만 교육 받을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을 아련히 떠올리게 한다.

보은사람들의 옷 취향을 고민하고 판매하고 있는 서울상회 이택호씨
보은사람들의 옷 취향을 고민하고 판매하고 있는 서울상회 이택호씨

 

여든살까지 생업을 한다는 것은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에 생업을 이어가는 어르신은 드물다. 
요즘도 한 달에 서너 번 대전 중앙시장까지 차를 타고 가서 빠진 옷들을 챙겨온다고. 예전처럼 매출이 오르는 걸 기대할 수 없고 재고는 점점 쌓여만 가지만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문을 여는 이유는 이곳을 계속 찾는 단골손님들이 있기 때문. 인터넷에서 메이커 옷을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것을 찾는 요즘, 보은에서 농사짓는 어르신들은 익숙하면서 마음이 가는 이곳에 와서 옷을 고른다. 적당한 가격으로 한 번 구입하면 길게 5년까지 입는다고.
"할머니들은 특히 한번 사면 적어도 5년은 입을 걸. 그래서 옷 회전이 안 되요. 자주 새것을 사지 않으니 만날 적자지. 시골 할머니들은 그리고 옷을 아껴 입잖어.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타산이 안 맞지만, 해오던 일이니까 해야지 싶어서 하는 겨"
한번 산 옷은 고집스럽게 입는다지만 옷을 고를 때만큼은 심혈을 기울인다. 대개 색이 화사한 옷들은 할머니들의 취향에 따라 골라온 것이다.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우중충한 색을 좋아했는데 시대가 달라지면서 취향이 달라졌다고. 색상을 보는 관점이 패션에도 영향을 줬을까. 남자옷을 한 벌 정도 팔 때 여자옷은 열 가지 종류를 판다고 한다. 
아내와 같이 운영하는 서울상회는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정리할 생각이다. 보은에 사람도 적고 소비성도 떨어지니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가업을 잇는 것은 클날 소리지. 아들 자식이 한다고 해도 내가 보따리 싸들고 가며 말릴 작정이야. 돈이 안 되는 걸. 시골에서 누가 옷 많이 사나. 다 작업복이고 기껏해야 생활복인데 있는 거 입지, 더 많이 안 사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황혼의 노을처럼 은은한 빛을 내면서 마로면을 비추고 있었다. 
현재 아들 둘과 딸 하나는 서울, 대전, 청주에 터를 잡았다. 시집, 장가 다 가고 이제 손자도 보면서 황혼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서울상회는 어떤 의미일까. 58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상회가 계속 마로면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큰 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문의 : 043)542-2727
주소 : 마로면 관기리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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