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주도 경관협정으로 쇠퇴 상권을 군산 명소로 탈바꿈
주민주도 경관협정으로 쇠퇴 상권을 군산 명소로 탈바꿈
  • 송진선·김경순 기자
  • 승인 2020.07.02 10:28
  • 호수 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체통거리 재생사업, 역량강화에 공동체 회복까지 가져와

보도순서

①철저한 준비 필요한 보은도시재생
②지역정체성 보존으로 활력찾은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
③관 아닌 주민에 의해 골목상권 조성된 경주 황리단길
④주민 참여로 지역활성화 성공한 군산시 우체통 거리
⑤주민자치역량으로 도시재생 성과낸 순천시 청수정
⑥공동체가 중심이 돼 기적 만든 정선 고한 마을호텔

재개발 사업이 마을을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이라면, 도시재생 사업은 낡은 도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즉 기존 도시의 틀을 유지한 채 진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협업과 소통은 필수다. 주민은 빠진 채 사업이 추진되면 사업기간 내 수많은 사업비는 투입되지만 사업기간이 종료되고 나면 건물만 덩그러니 남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미 이같은 모습은 보은군이 추진한 각종 마을만들기 등 농촌개발사업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보은군은 올해 국토교통부가 공모하는 도시재생사업 응모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제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재생대학을 운영하기 위해 수강생을 모집, 개강했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인해 중단했지만 조만간 도시재생대학도 운영할 계획이다.
본보는 보은군도시재생 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둬 지역에 활기를 찾도록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골목상권 활력을 찾은 선진사례지를 기획취재했다. 기사를 통해 보은군이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이 침체된 골목상권에 생기를 돌게 해 소멸 위험지역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도록 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우체국통 거리에 있는 일반 건물의 외벽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각양각색 우체통을 붙여놓고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체국통 거리에 있는 일반 건물의 외벽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각양각색 우체통을 붙여놓고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14년 시작해 2019년 3월 사업이 끝난 군산시 도시재생사업은 재생과 관광을 결합해 관광도시 군산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선택했다. 일제강점기의 노후된 일본식 건물과 적산(적의 재산을 뜻함) 가옥들이 즐비했던 군산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일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함과 동시에 주변 재개발로 근대문화역사도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일제의 수탈흔적이 문화유산에서 아픈 역사를 다시 확인하고 배움의 현장이 되고 있는 군산은 연간 방문 관광객 300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도시로 성장했다.
일본 상인들이 군산의 상권을 장악하도록 특혜를 줬던 1922년식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군대건축관으로 재탄생하고 군산검역소는 경로당으로, 목욕탕은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군산세관 본관, 일제강점기 무역회사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미즈 카페, 예술전시공간 장미갤러리, 일본 118은행 군산지점을 개조한 근대미술관, 미곡창고주식회사를 개조한 장미공연장, 진포해양공원, 농협 쌀창고의 외관을 그대로 살린 카페 및 미곡 갤러리, 일제강점기 군산 개항 이후부터 줄곧 목욕탕과 여관이 있던 영화빌딩의 이당미술관, 적산가옥을 그대로 살린 게스트하우스 '고우당', 일본식 사찰 동국사 등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현재도 확인할 수 있다. 지어진 근대식 건물을 비롯해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구도심내 적산가옥 등 근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하고 주변에 다양한 문화체험공간을 조성했다.
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는 대한민국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을 비롯해 영화를 통해 봤던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의 실제 촬영장인 초원사진관도 이 안에 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하는 군산시 우체통거리는 바로 군산시 시간여행마을, 즉 근대역사문화지구와 4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근대역사문화지구로 재생될 때 이곳도 지구 안에 포함됐지만 도시재생 활성화사업이 투입되지 않은 곳이다. 

도란도란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위원회
일제강점기에는 군산좌 영화관을 중심으로 신문화가 유입됐으며 50년대에는 한국화가들이 활동하는 등 군산 예술문화의 꽃을 피우던 곳이다. 그러다 1990년대 군산시청, 경찰서 등 공공기관이 외곽으로 이전하고 군산극장 등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지역 예술의 중심지이자 문화중심지였지만 그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14년부터 진행된 군산시 도시재생 사업에 총 940억원 가량이 투입됐지만 이곳은 정부지원에서 늘 빗겨갔다. 상인들은 이곳을 뜨고 싶어도 인근 근대역사문화지구인 월명동은 땅값이 크게 올라 이주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이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도 직접 살 길을 찾아 나섰다. 2015년 상가번영회로 '도란도란 모임'이 탄생했다. 상인들은 무엇이라도 해보자고 뜻을 모았지만 사실 특별한 것을 찾기 힘들었다. 그때 떠올린 게 우체통이다. 이곳에는 11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군산우체국 본점이 위치해있다. 이 역사성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전북우정청을 통해 수집한 폐우체통에 그림을 그려넣어 거리 양쪽 곳곳에 설치한 것이 시작이었다. 더 큰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났다. 이 거리 47명이 뭉쳐 '도란도란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만들었는데 주민들이 직접 주도해 경관협정을 체결했다. 군산시로서는 최초이고 전국적으로 7번째 사례다.
경관협정운영회는 쾌적하고 편리한 거리로 정비해나갔다. 내집 앞 청소와 화분 물주기는 물론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주민들이 나와 거리 청소를 하고 회의를 정례화 했다. 공터 등 주변 정비, 낡은 건물 보수하고 가꾸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또 세입자라는 단어 대신 운영주로 부르기, 운영주 스스로 불법주정차 하지 않기 등 가벼운 약속부터 시작했다.
회원들은 모두 건물주는 2만원, 운영주는 6만원이 연회비를 낸다. 회비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탈퇴 사례도 없이 더욱 결속시켰다.
건물주가 동참해 임대료 상승률 제한에 대한 합의도 이뤄냈다. 협정에 따르면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5년간은 무조건 동결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인상률은 15%를 넘지 못하며, 이 역시 총회에서 전원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이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기서 창출된 이익이 외부로 빠져나가서는 안된다'는 대전제 아래 이뤄진 협의다. 긴 호흡으로 진행된 이같은 합의는 거리를 살리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게 했고 화합을 시키고 있다.

우체통, 상권활성화까지 도모
스스로 주민 의식개혁 및 지역가꾸기를 도모한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는 2017년 군산시에 '우체통거리 만들기' 도시재생사업 제안서를 냈다. 110여년간 군산 세월을 간직한 군산우체국 본점이 위치한 것을 모티브로 폐우체통을 이용한 우체통거리 만들기라는 제안이었는데 이 사업이 채택돼서 처음으로 300만원을 받았다.
주민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쓰지 않는 150여개의 폐우체통을 수거했다. 그리고 40여개의 가게마다 한 개씩 지역 미술가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가게의 특징을 반영한 개성넘치는 그림을 그려넣었다. 미용실은 파마머리의 여인을, 안경점은 안경을, 꽃집은 꽃다발을 든 모습 등. 이것이 가게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센서를 운영해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중 8개는 실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관협정운영회가 운영하는 것으로 1년 뒤에 받는 느린우체통, 소원우체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거리에는 또 우편물이 담긴 가방을 멘 모자를 눌러쓴 우편배달부 조형물이 설치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우체통변천과정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우체통 모양의 태양광 가로등, 체통 모양의 볼라드 등 거리의 시설물을 우체통으로 통일해 눈길을 끌었다. 
이같이 주민이 주도한 우체통거리는 입소문과 함께 군산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SNS를 타고 홍보됐다. 시간여행마을과 이웃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접근성도 좋아 군산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가 됐다. 거리 방문자는 군산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에 그치지 않고, 주민주도로 재생된 마을만들기의 과정을 보기위해 중앙부처, 타 지자체의 견학도 줄을 잇고 있다. 행정지원 없이 스스로 회비를 모아 변화를 이끌어낸 우체통거리 주민들도 자부심에 가득차 있다.

건물주, 임차인 경계 허물고 도란도란 공동체로 회복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실시하고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손편지축제도 군산시의 보조없이 전액 주민 자담으로 시작했다. 첫해 500만원으로 시작한 손편지축제는 스마트폰 문자에 익숙해 우편봉투 쓰는 방법도 모르던 학생과 가족 등 시민들의 참여로 높은 호응을 얻었다. 실제 우표로 사용할 수 있어 나만의 우표만들기 이벤트는 특히 인기다.
축제장에 야시장 등 음식점을 들이지 않고 시민 등 관광객들은 우체통거리의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게 했다. 이로인해 상가 매출 증대로 인한 상가활성화, 우체통거리 홍보로 이어졌다. 서로 신뢰하고 서로 돕는 등 주민의 단합력 증대 등 다양한 효과지역에 대한 긍정적 변화로 이어지면서 공동체 회복을 가져오는 결과로 나타났다.
배학서(64) 도란도란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 회장은 "문화행사 하나하나 우리가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회원들이 함께 노력하면 앞으로 더 좋은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처음엔 생각 차이로 인해 다소 갈등이 있었지만 소통하고 화합하면서 방법을 찾다보니 기대이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민들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깨닫고 운영회 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그러면서 "우체통거리만들기라는 주민 주도의 재생사업이 결과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내적역량을 강화한 것은 물론 공동체회복까지 가져와 그 점이 더욱 뿌듯하다"며 지역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이 주민에 있음을 확인시켰다.
신상철(68) 부회장은 배학서 회장의 리더십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리더의 발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시재생 사업은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사업이다. 행정기관,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역할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민주도로 주민이 해야 성공할 수 있고 지속가능하다"고 밝혔다.
군산시 우체통거리. 더디고 오래 걸리더라도 모든 의사결정을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해 이룬  도시재생 케이스여서 타 지자체 도시재생사업지역 주민들의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