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주도 아닌 주민이 자발적 개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관 주도 아닌 주민이 자발적 개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 송진선, 김경순
  • 승인 2020.06.25 09:27
  • 호수 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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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 소문나자 황남동을 헷갈리게 했다고 줬던 공무원의 핀잔준 일은 추억이 되기도

보도순서

①철저한 준비 필요한 보은도시재생
②지역정체성 보존으로 활력찾은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
③관 아닌 주민에 의해 골목상권 조성된 경주 황리단길
④주민 참여로 지역활성화 성공한 군산시 우체통 거리
⑤주민자치역량으로 도시재생 성과낸 순천시 청수정
⑥공동체가 중심이 돼 기적 만든 정선 고한 마을호텔

재개발 사업이 마을을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이라면, 도시재생 사업은 낡은 도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즉 기존 도시의 틀을 유지한 채 진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협업과 소통은 필수다. 주민은 빠진 채 사업이 추진되면 사업기간 내 수많은 사업비는 투입되지만 사업기간이 종료되고 나면 건물만 덩그러니 남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미 이같은 모습은 보은군이 추진한 각종 마을만들기 등 농촌개발사업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보은군은 올해 국토교통부가 공모하는 도시재생사업 응모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제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재생대학을 운영하기 위해 수강생을 모집, 개강했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인해 중단했지만 조만간 도시재생대학도 운영할 계획이다. 본보는 보은군도시재생 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둬 지역에 활기를 찾도록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골목상권 활력을 찾은 선진사례지를 기획취재했다. 기사를 통해 보은군이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이 침체된 골목상권에 생기를 돌게 해 소멸 위험지역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도록 하고자 한다.<편집자>

경주 황리단길은 젊은이들의 거리다. 주말마다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가즉하다.
경주 황리단길은 젊은이들의 거리다. 주말마다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가득하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서 떠오르는 신흥 상권 모두가 경리단길에서 이름을 따왔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망리단길'과 송파구의 '송리단길', 부산 해운대구 '해리단길', 부산 망미동의 '망미단길' 수원 행궁 주변의 '행리단길', 전주 한옥마을 인근의 '객리단길', 인천 부평의 '평리단길', 대구 '봉리단길', 광주 동명동 '동리단길' 등  전국적으로 ○리단길이 2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경북 경주시 '황리단길'도 그 예이다. 경주의 단일 고분 중 가장 큰 규모인 봉황대 부근 카페거리를 황리단길이라 부르는데 주변에 위치한 교촌 한옥마을과 함께 경주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다. 경주 황리단길은 황남동 포석로 일대 대릉원 후문이 있는 내남 네거리에서 황남초등학교 네거리까지 남북 방향으로 나 있는 포석로 700여m 구간과 대릉원 돌담길 주변 골목길까지를 말한다.
조금만 걸으면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과 첨성대, 계림, 월성 동궁과 월지 등이 있는 동부사적지대와 최근 복원한 월정교 등 역사문화유적이 널려 있는 노천박물관과 접하고 있다. 역사문화유적이 널려있어 함부로 땅을 파기도 어려운 낡은 한옥마을에 불과했던 곳이 어떻게 경주의 가장 핫한 곳, 상권이 살아난 골목이 됐을까? 그 비결을 알아본다.

경주 낙후지역 대명사에서 천지 개벽
4, 5년전까지만 해도 황리단길은 지금과 딴판이었다. 세탁소나 선술집, 원동기 수리점, 철학관 같은 한물간 업소와 집창촌도 있는 등 변변치 않은 곳이었다.
주변에 시청이 있었던 원도심이었지만 시청이 북천 너머로 이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각종 건축 행위마저 제한되자 경주의 대표적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여느 농촌마을처럼 젊은이들은 거의 떠나고 대부분 노인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이들도 대부분 중앙시장, 성동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지었다. 바로 연접해 천마총 등 대릉원이 있고 첨성대가 있고 월성, 계림 등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수학여행단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것.
이렇게 '발전'과 거리가 멀어 보이던 황리단길, 주변에 고분(무덤)이 지천인, 그야말로 '후진' 골목길이 젊음의 거리로 변모하면서 황남동은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이렇게 변모된 오늘의 황리단길을 만든 데는 이 지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30년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향한 김성일(56) 경주 고도지구주민자치협의회 사무국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오랫만에 돌아온 고향 황남동은 서울과 너무도 다른, 연간 1천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이지만 고향마을은 세탁소나 선술집, 원동기 수리점, 점집, 철학관, 집창촌 같은 한물간 업종이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김성일 사무국장은 마을 탐색에 나섰다. 직선 2㎞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상권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긍정적 신호였던 셈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낙후시킨 원인으로 문화재를 꼽았지만 김 사무국장은 반경 2㎞ 이내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역사 유적지를 기회로 이용했다. 전국에서 연간 1천만명이 찾는 관광지라는 입지 조건이 좋아 전국적 명소로 부상하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이곳의 기존 업종과 전혀 다른 청담동 며느리 김밥이란 상호의 즉석 김밥집을 냈다. 속은 단무지, 시금치가 아닌 아스파라거스, 샐러리, 브로콜리, 콜라비, 비트 등을 재료로 이용했다. 19금 김밥도 만들었다. 그리고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힌트를 얻어 황남동이기 때문에 황리단길, 황태원이란 이름으로 블로그, 카스, 페북, 밴드 등 SNS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봉황대에서 프리마켓을 하는 젊은 친구들을 설득해 이곳에서 프리마켓을 열도록 하고 소품가게를 내도록 하고 커피숍을 내도록 권유했다. 젊은이들이 입점한 가게도 늘어날 즈음 경주에 지진이 발생했다. 수개월 동안 방송마다 메인뉴스로 올랐다. 미국 CNN에도 보도될 정도로 지진은 관광 뿐만 아니라 일반 방문객마저 수 개월 동안 발길을 끊게 만들었다.
그러다 국민들 사이에서 고도를 살려야 한다는 재건운동이 일었고 경주 방문객이 늘었다. 이렇게 다시 찾은 경주 방문객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은 것이 황리단길이었다. 고층 아파트 등 빌딩 숲에서만 살던 젊은이들은 경주하면 고분, 첨성대 등 오래된 문화유적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색다른 곳도 있네 하며 멋지다, 가보고 싶다는 등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새로 건물을 신축해 상가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기존 기와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일부만 수리한 것들로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언더스타일이 그들 취향에 맞아떨어져 스스로 SNS로 황리단길을 앞다퉈 홍보했다.
대로변 및 골목안 가정집까지 개조해서 맛집, 수제맥주집, 카페 등이 들어서고 게스트하우스 등 3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서고 있다. 이름난 맛집 앞에 관광객들이 줄지어 늘어선 향리단길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된 경주시의 대표적인 상권이 됐다.

밤이 돼도 경주 황리단길은 젊음의 열기로 가득채워진다.
밤이 돼도 경주 황리단길은 젊음의 열기로 가득채워진다.

 

경주시가 2억 용역으로 활성화 못시켰는데…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은 경주시도 마찬가지였다. 가게마다 수 십 미터 줄을 서고 인터넷에 황리단길만 치면 수많은 젊은이들 관광객들이 관광하는 사진이 도배된 전국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았지만 경주시청만큼은 이 사실을 몰랐다.
당시를 회고한 김성일 사무국장은 "핫플레이스 황리단길을 뒤늦게 안 경주시청의 공무원들은 황남동이란 행정명을 두고 왜 황리단길을 만들어 시민들을 헷갈리게 만드느냐고 오히려 질책하고 당장 중단하라"고 회고하며 발끈했다.
그 일이 있은 후 3개월 뒤 공무원들의 탁상머리 행정은 현장으로 출동해 직접 황리단길을 목격한 시장에 의해 지적됐다. 경주시장은 이곳을 살리겠다고 2억원을 들여 용역을 수행했는데 시는 그동안 뭐 했냐, 용역은 왜 했냐고 공무원들을 질책한 것이다. 행정예산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주민들이 상권을 살렸으니 공무원들은 책상에 앉아서 용역비 2억원만 낭비한 꼴이 된 것이다.
또 80만원 비용의 한복 패션쇼를 하면 입상자들에게 황리단길 가게 이용 상품권을 지급했는데 행사를 본 공무원은 1천만원은 족히 들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80만원으로도 상인이나 관광객이나 재미있고 즐거운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을 관이 개입되면 1천만원으로 부풀려져 결국 돈 줄줄 새는 행사가 될 수 있다며 행정이 개입할 경우 비효율적이고 낭비될 소지가 다분함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경주시는 황리단길 상권활성화 사업에 대한 민간의 역할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은 기반 확충으로 제한하고 있다. 황남동주민센터는 황리단길 가게 위치와 주변 관광지 정보를 담은 안내책자를 제작해 배부했다. 고도에 맞게 집을 고치거나 신축시 최대 1억원을 지원해 경주 한옥마을의 모습을 유지하도록 했다.
또 공중화장실과 주차장을 확충하고 공원을 조성했다. 최근엔 관광객들의 편리하고 안전한 도보여행을 위해 쌍방향 통행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꿨다. 이같이 황리단길을 찾는 여행길들의 편의시설을 갖추는 등 관광도시 경주시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없애기 위해 건물주 자정노력
이곳 부동산 업소 관계자는 "황리단길로 뜨기 전 황남동은 과거 3.3㎡에 200만~300만원 하던 땅이 지금은 2천만원 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또 "15평~20평 정도 되는 가게의 월 임대료는 30만~40만원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최소 100만원, 최대 500만원으로 폭등했다"고 말했다. 경주시 최고의 핫한 곳임을 부동산 가격에서도 알 수 있다. 초창기 이곳에도 폭등하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짐을 싸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보였지만 경주 고도지구주민자치협의회에서는 건물주들을 대상으로 이태원의 사례를 들며 의식교육에 집중해 문제를 해결했다.
모두 황남동 즉 황리단길 토박이인 정종호(71) 회장 및 김정호(74) 부회장, 그리고 김성일(56) 사무국장은 "임대료가 상승하면 젊은이들이 이곳을 떠나야하는 상황에 몰리고 자연스레 황리단길의 특색이 사라질 수 있어 건물 임대인과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상임들이 함께 살아가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의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식 변화는 단순히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또 주민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그것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황남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고도라는 책자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일 사무국장은 "경주시장 및 공무원들에게도 우리를 도와주는 것은 시에서 우리 동네를 찾아오지 말라, 안오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농담일 수 있지만 관에서 터치해 관의 냄새가 나면서부터 황리단길은 퇴색하는 것이라는 것. 주민 자발적인 주민 주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국적인 핫플레이스 황리단길의 예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송진선. 김경순 sun@boeunpeople.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착안, 경주의경리단길인 지금의 황리단길을 만든 김성일씨.
옷집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거리에 옷가게도 들어서는 등 점포의 구색을 맞추고 있다.
별도로 기둥을 세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둥에 각 점포의 이정표를 붙여서 초보자들의 길안내를 하고 있다.
건물 외벽이 빈 공간으로 남아있자 이미지화한 황리단길을 붙여 볼거리로 만들어놓았다.
방송광고촬영으로 유명한 곳. 허름한 주택인데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불을 밝힌 마당에서 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이 꽉 들어찬다. 또 밤에는 오른쪽 허름한 벽면을 스크린삼아 영화필름도 돌아간다.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이 경주 황리단길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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