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행 길을 걷다 …속리산 중의 무인지대
테마기행 길을 걷다 …속리산 중의 무인지대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1.06.30 11:33
  • 호수 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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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지천인 그곳에 세상의 번뇌를 내려놓다

길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반가운 사람 마중을 위해 동구 밖까지 걸어가는 동안 얼마나 즐거습니까? 사랑하는 망자를 떠나보내는 그 길이 얼마나 슬픕니까? 인기척조차 없는 길을 혼자 외롭게 걸으며 사색에 젖다보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고민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길에 오른 유생들이 금의환향한 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길에는 즐겁고, 슬프고, 기쁜 사연들이 넘쳐납니다.

제주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북한산과 지리산 둘레길, 전북 마실길 충남의 옛길 등 갖가지 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가까운 충북에도 괴산군이 산막이 옛길을 만들어 블랙홀처럼 트레킹 족, 관광객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본보는 둘레산행 종주를 마치면 길을 걸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5월로 둘레산행을 마쳐 7월부터 '테마기행 - 길을 걷다’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본격적인 '길을 걷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6일 지금은 폐쇄된 동암을 지나 중사자암 앞을 지나 문장대를 오르던 길을 걸었습니다. 본보 지면사정으로 이제야 지면에 게재합니다. 계절적 감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독자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법주사 뒤 속살을 보다
단오절이었던 지난 6일 법주사 단오절 체육대회를 취재한 후 산문을 닫은 법주사의 속살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볼게 없어.  법주사 상수원이기 때문에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라고 했지만 일반인들은 감히 통하지 못하는 그 길을 꼭 걷고 싶었다.


노현주지스님의 허락을 받아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류재관씨와 이재숙씨, 그리고 법주사 불교대학 2기 총무인 정은상씨와 함께 속세인들이 다니지 않는 바로 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군 산림부서에서 근무하면서 과거 솔잎혹파리가 창궐했던 때 수간주사를 놓기 위해 바로 이 길을 탐한 적이 있었다는 류재관씨가 길안내를 했다.


잔디구장에서 문장대쪽을 보면 문장대 대신 관음봉이 보인다. 법주사 산문은 잔디운동장을 끝으로 빗장을 걸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랐다. 폭이 3m는 족히 될 정도로 제법 넓었다. 그 흙길 옆으로는 계곡이 계속 이어졌다. 얼마간 오르니 넓은 길은 계곡 쪽으로 향하고 산 쪽으로는 지금 길의 반 정도 폭으로 좁아졌다. 계곡 쪽으로 난 길이 바로 계곡 수를 먹는 물로 취수하는 곳이었다. 법주사 상수원이 맞았다.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발을 옮겼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를 자랑하며 쭉쭉 뻗어 각선미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걷기에 아주 좋았다. 숲길을 걷는 동안 마음에 깃든 녹진한 마음의 때는 벌써 씻겨 내려갔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싶은데 석문이 나왔다. 바위 2개 중 한 개가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서로 부둥켜안아 삼각형의 문이 되었다. 그 문은 의례적이 아닌 반드시 통과해야만 저 높은 곳을 향할 수 있는 그런 관문이었다. 그 관문을 통과하면서 나는 세상의 번뇌를 한 꺼풀 벗은 것 같이 자유로움을 느꼈다.

석문을 지나 몇 발 떼지 않았는데 계곡과 마주했다. 첫 번째 삼거리였다. 좌측으로는 길이 없이 계곡으로 이어졌고 오른쪽으로 폭이 1m도 채안되는 좁은 산길이 나 있다. 여기서부터 완만한 경사로다. 100m정도 오르다 우리 일행은 멈췄다. 이 길을 계속 가다보면 두 번째 작은 석문이 나오고 두 번째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관음봉 아래로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있는 관음암 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우측으로 가면 중사자암이 나오고 문장대로 향해 현재의 탐방로로 연결 되는 것인데 폐쇄된 길이어서 삼거리에서 중사자암까지 길이 분명하지가 않다고 한다.
그동안 몰랐던 이 길의 쓰임새는 아주 컸다고 한다.

자연공원협회 박남식 회장은 "절이 정리되기 전 속리산 안에는 절이 많았다. 지금은 많이 정리되고 터만 남아있는데 과거 이 길은 법주사를 거쳐 관음암, 중사자암을 향하거나 경북 용화지역 신도들이 속사치를 올라 관음암, 중사자암, 상환암, 상고암, 중고암(없어짐) 그리고 하고암(없어짐)을 찾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길은 산중의 절에 닿고 가다보면 문장대까지도 닿을 수 있던 길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산중의 암자들이 정리되면서 길은 자연스럽게 폐쇄됐다.

 

#초록의 숲이 정말 좋다
법주사 산문부터 석문지나 삼거리에서 중사자암 쪽으로 오르다 멈출 때까지 3, 4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굨 급경사가 아니어서 전혀 숨이 차지 않고 가볍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었다. 아스팔트, 시멘트 길을 많이 걸어서 그런지 부드러운 흙길은 발걸음까지 가볍게 했다. 발밑에 와 닿는 느낌이 무척이나 좋았다. 더구나 그늘까지 드리워져 걷기에는 그만이었다.

알싸하기까지 한 청아한 공기, 초록의 숲은 심신의 안정까지 가져다준다. 숲에서는 온갖 나무들이 하나다. 소나무, 참나무가 서로 다른 종이어서 제각각 싸울 법도 한데 서로 어울려 산다. 옆의 나무에 짐이 될까봐서인지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며 자란다. 사람도 이렇게 서로 아귀다툼하지 않고 서로 양보하며 어울려 산다면 평화로울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 색의 쪽동백 꽃도 봤다. 6월초에 봤으니 지금은 흔적도 없겠지? 만개한 쪽동백의 없는 듯한 향기가 기분좋게 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의 발길에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린 것’처럼 생을 다한 쪽동백 꽃들이 길 위에 뿌려져 사뿐히 즈려밟는 호사도 누렸다.

산수유 꽃과 착각하기 쉽게 노랗게 꽃술을 피우며 산중 가장 일찍 봄의 서막을 알리는 생강나무의 잎사귀가 세 갈래로 갈라지기도 하고 하나로 모아진 것이 있다는 것도 유재관 숲해설가님의 해설로 처음 알았다.

지식을 충전한 느낌이다.
물이 귀하기는 이곳 계곡도 마찬가지였다. 덕유산의 물줄기가 무주구천동으로 이어지고 설악산의 물줄기가 천불동으로 이어지고 지리산 물줄기가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게 부럽기만 하다.

물은 귀했지만 계곡에 바람이 불면 물소리도 더 쾌활해 진다. 서늘한 계곡의 기운에 여름 더위가 싹 가실 듯 했다.

물은 깨끗하고 차가웠다굨 잠시 물가에서 쉬면서 눈을 들어 하늘을 봤다. 산 양쪽에 걸린 하늘이 좁다. 하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히 감춰져 있어서 묘한 매력이 있었다.
6월 어느 한자락 여름이 깊어지는 숲과 계곡에서 세상사의 상념을 잠시 접고 자신과 마주 했다.
길을 걸어 간 게 아니라 걸어서 자신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 나를 돌아보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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