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고운글] 거꾸로 가는 자전거
[결고운글] 거꾸로 가는 자전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6.18 09:11
  • 호수 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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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이 만 동
조자용민문화연구회 대표, 도화리

1990년 대 초, 직장 생활을 일찌감치 접었다.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내 일을 하고 싶었다. 직장에서 하던 일이 출판 편집과 관련된 일이었다. '배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출판사를 차렸다. 무일푼으로 시작하다 보니 출판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광고기획 업무를 병행했다. 선후배 사무실을 찾아 다녔다. 명함부터 카달로그, 책자 편집 등 닥치는 대로 디자인과 인쇄를 해서 납품을 했다. 매달 직원들 월급 주기 바빴지만, 희망을 갖고 몇 권의 책을 출판해 전국 서점에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3년 대전엑스포' 결과보고서 제작 일을 맡게 되었다. 한글과 영문 각각 1,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책자였다. 기획부터 번역, 자료 입력, 디자인, 편집 · 인쇄까지 6개월 이상 걸렸다. 어쨌든 어렵사리 완성된 6권의 결과보고서와 함께 그동안 작업했던 원고와 사진 파일 전부를 조직위원회에 납품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조직위원회로부터 CD 한 장을 받았다. 충격이었다! 2,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자의 텍스트와 수 천 장의 컬러 사진, 심지어 조직위원장의 인사말 동영상까지가 단 한 장의 CD에 담겨 있었다. 종이 출판, 인쇄업을 하던 당시의 나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 것이다. 1995년, 나는 종이 출판, 인쇄업을 접고 컴퓨터와 CD, DVD로 진화하는 신종 '멀티미디어' 사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는 CD대여체인사업, PC방, 인터넷 전용선 판매 등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 나의 개인적인 신변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90년대 말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스마트 폰이 보급되면서 급속도로 변화하는 정보산업혁명 속에서,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고 적응한 기업들은 엄청난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지하 사무실에서 불과 몇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창업한 네이버나 엔씨소프트, NHN 같은 인터넷 기업들이 지금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과 맞먹는, 아니 오히려 그 회사들을 넘어서는 자산 규모의 회사가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1997년 느닷없이 들이닥친 IMF와 전 세계적인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도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었고 그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미래 유망 산업을 창조한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라는 엄청난 위기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인간들의 삶과 생활방식 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 분야에서 또다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에 당황하고 답답해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분명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많은 기업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항상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IMF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성공을 이룬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존재했듯이. 경영이 어려운 업종이 있으면 반대로 유망한 업종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유망 업종을 크게 5개 분야로 제시하고 있다. 1.의료, 2.안전, 3.환경, 4.비대면, 5.로봇산업 등이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비대면 사업이다.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온라인 교육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택배 관련사업 등이다. 사람들이 접촉을 꺼리게 되니 그런 산업들이 발전할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그 쪽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지자체나 정부 역시 그 쪽 분야에 대한 정책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보은군의 정책과 예산 집행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시대를 거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군민들이 반대를 하는 다목적 종합운동장 조성에 지난 10년 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왔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올해 추가로 16억5천만 원의 예산을 통과시켰다. 코로나 사태로 축구, 야구 등 프로 스포츠 경기도 관중 없이 치르는 비대면 시대로 변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과연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과연 경제 유발 효과가 정상적일 때도 의문시 되던 체육시설들이 코로나 시대에 경제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차라리 그런 돈으로 아래와 같은 정책에 투자하면 더욱 효과적인 것은 아닐까?
1.군내 드론 배달 시스템 개발 2.식당들의 거리 두고 손님맞이 시스템 연구 및 지원 3.코로나 사태로 우울해진 군민들의 심리 상담과 의료시설 보완 4.첨단 디지털 어린이 회관 설립 5.군내 초·중·고등 학생들의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지원 6.보청천 주변 사계절 테마 관광자원 개발 7.스마트 팩토리(공장자동화) 지원 등등
거꾸로 가는 자전거가 있다. 재미로 만들었겠지만 페달을 열심히 밟아도 자전거는 뒤로 달린다. 뒤를 돌아보며 달리니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넘어지기 십상이다. 자전거는 앞으로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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