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배기 달동네의 재발견 달+토끼 스토리 벽화로 마을 활력
언덕배기 달동네의 재발견 달+토끼 스토리 벽화로 마을 활력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0.06.11 09:54
  • 호수 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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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도 들어가기 거부했던 곳이
입소문 타 관광객 찾는 명소로 발전

보도순서

①철저한 준비 필요한 보은도시재생
②지역정체성 보존으로 활력찾은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
③관 아닌 주민에 의해 골목상권 조성된 경주 황리단길
④주민 참여로 지역활성화 성공한 군산시 우체통 거리
⑤주민자치역량으로 도시재생 성과낸 순천시 청수정
⑥공동체가 중심이 돼 기적 만든 정선 고한 마을호텔

재개발 사업이 마을을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이라면, 도시재생 사업은 낡은 도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즉 기존 도시의 틀을 유지한 채 진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협업과 소통은 필수다. 주민은 빠진 채 사업이 추진되면 사업기간 내 수많은 사업비는 투입되지만 사업기간이 종료되고 나면 건물만 덩그러니 남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미 이같은 모습은 보은군이 추진한 각종 마을만들기 등 농촌개발사업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보은군은 올해 국토교통부가 공모하는 도시재생사업 응모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제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재생대학을 운영하기 위해 수강생을 모집, 개강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중단했지만 조만간 도시재생대학도 운영할 계획이다. 본보는 보은군도시재생 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둬 지역에 활기를 찾도록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골목상권 활력을 찾은 선진사례지를 기획취재했다. 기사를 통해 보은군이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이 침체된 골목상권에 생기를 돌게 해 소멸 위험지역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도록 하고자 한다.<편집자>

달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산다는 우화를 스토리텔링해 캐릭터인 토끼가 벽화로 또는 조형물로 동네 곳곳에서 뛰노는 곳이 됐다.
달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산다는 우화를 스토리텔링해 캐릭터인 토끼가 벽화로 또는 조형물로 동네 곳곳에서 뛰노는 곳이 됐다.

부산 감천마을, 통영 동피랑, 동해 묵호등대마을. 이곳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언덕배기 달동네이고 최고의 관광명소가 된 곳들이다. 개발의 붐 속에 낡고 후진 곳으로 치부 받으며 외면 받았던 곳들이 예술의 옷을 입고 관광 명소로 비상한 곳이다.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도 마찬가지다. 성진골이라 불리던 25통과 26통은 가파른 언덕배기에 축대를 쌓아서 지은 마당없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안동시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안동시내 도심지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영남산으로 올라가는 기슭을 따라 90여채 남짓한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안동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성진골을 가자고 하면 승차거부를 할 정도로 교통낙후지역이었고, 200여명 남짓한 이 마을 주민들은 날품을 팔거나 공공근로로 생계를 이어 가는 형편이었다.
이곳에서 먹고살기 힘든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갈 날(?)이 더 가까운 고령의 어르신들이 사는 안동의 대표적인 고령지역이기도 했다. 소멸위험지역으로 진단받은 보은군과 별반 다르지 않는 그런 마을이었다.
희망, 활력, 생기 이런 단어와는 영원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안동시 신세동 벽화마을이 달라졌다.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지고 웃음소리가 문 밖으로 터져 나왔다. 게다가 경제활동 하는 젊은이들까지 몰려들었다. 도대체 성진골 신세동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벽화를 계기로 도시재생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마을공동화와 낙후 이미지를 벗고 지속가능한 문화관광 콘텐츠로 관광지로서도 성공한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을 소개한다.

공공미술의 힘 무표정 마을에 생기가 살아나
도시재생사업의 모티브가 된 공공미술 벽화는 그야말로 낙후된 성진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캔버스가 된 주택 담벼락, 외벽은 벽화로 알록달록해지면서 골목엔 표정이 살아났다. 공공미술의 힘은 이렇게 동네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마을 들머리에는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을 벽화로 그려넣었는데 도시깍쟁이가 아닌 푸근하고 소박해보이는 얼굴이 크게 그려진 벽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심이 좋은 '복덩이 할머니'를 비롯해 이 마을에서 옷을 가장 잘입고 멋을 부린다는 세탁소 아저씨의 벽화 등 마을 한복판으로 난 골목길 300여m를 따라 올라가면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이 가던 발길을 붙잡는다. 줄을 잡고 거꾸로 매달린 스파이더맨, 벽화뿐만 아니라 '줄 타는 고양이', '오줌 누는 개' 등으로 이름을 붙인 우스꽝스런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이 마을에서 안동대 출신으로 이뤄진 예술팀 '연어와 첫비'가 마을 꾸미기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9년 6월 초순이다. 처음 벽화작업을 할 때는 꿈자리가 사납다며 한사코 못그리게 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그런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녔는데 한 달이 지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작가와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짜내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한 결과 마을은 '지붕 없는 산자락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100여m가 넘는 동부초등학교 담벼락 벽화는 이 학교 교사와 학생 등 70여명이 힘을 모아 그렸으며, 집 담벼락의 벽화도 생업을 제쳐 둔 채 페인트를 칠해 주고 끼니때마다 새참을 해 주는 등 주민들의 도움으로 벽화작업은 성공리에 완성했다. 그리고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전국 공모에서 대구·경북에서는 유일하게 당선돼 정부 지원금 1억원을 받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첫 벽화를 그린 후 벽화마을로 소문이 나면서 성진골은 나이많은 주민 몇 명만 모여살던 동네가 아닌 벽화를 보기 위해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은 그런 마을로 변모해갔다. 주말이면 2, 300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평일에도 수십명이 몰리는 안동의 관광명소가 됐다.
성진골 25통 주진도(75, 그림애문화마을협의회 대표) 통장은 "마을이 안동 도심지에 자리잡고 있지만 택시도 들어오기를 꺼릴 만큼 소외됐었는데 벽화작업 이후 마을이 확 달라지고 밝아지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청년들 전입, 생기 넘치는 마을로 재탄생
산골과 연접하고 가파른 언덕배기에 위치, 달동네인 성진골은 벽화로 뜨면서 '달피는 꽃동네 신세동 벽화마을'로 마을 대문의 문패를 갈았다.
달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산다는 우화를 스토리텔링해 캐릭터인 토끼가 벽화로 또는 조형물로 동네 곳곳에서 뛰노는 곳이 됐다.
보름달이 가장 크게 뜨는 어느날 밤 달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던 12마리 아기토끼들이 뛰어노는 곳인데 붓을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거나, 숨바꼭질을 하거나 놀다 잠이든 토끼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벽화마을의 캐릭터인 토끼의 다양한 모습을 찾는 것도 재미다.
신세동 성진골이 이렇게 벽화마을로 변신에 성공한 것은 마을에 스며든 젊은 청년 창업사업가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1인 기업가로 활동하던 정윤정(기획)씨 등 도시재생 활동가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신세동 벽화마을은 날개를 달았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도시재생을 일궈나갔다. 기획자, 문화관광 기획관련 분야의 젊은이들로 젊은 인력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인력풀이 풍부해졌다. 다누림협동조합 경제조직체까지 조직해 문화기획, 행사기획 등으로 마을의 내적발전도 꾀했다.
여기에 도시재생 주민기구인 신세동벽화마을 마을협의체는 그림애문화마을협의회를 조직해 꽃가꾸기를 하고 마을 청소를 하는 등 공동체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협의회 산하에 구성된 그림애문화기획단이 기획한 다양한 행사로 노쇠한 마을은 표정이 살아있는 문화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젊은 피 수혈로 마을 사업은 보다 창조적으로 추진돼 15년엔 7억원 규모의 창조지역사업에 선정되고 도시재생사업으로 17억원이 투입됐다.
폐가를 구입해 할매(할머니) 점빵을 차리고, 주차장을 만들고, 고지대의 달동네인 성진골에서 안동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마을전망대도 설치했다. 또 마을 안에 있는 동부초등학생들이 체험장으로 활용하도록 텃밭도 마련해 학생들이 농작물을 직접 심고 가꾸며 먹거리 및 자연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플리마켓인 그림애장터를 열어 공방을 운영하는 공예작가들이 만든 물건도 팔고 할머니들이 만든 빈대떡에 막걸리를 파는 시장을 열어 할머니들에게는 소액이지만 돈을 버는 재미도 느끼게 해줬다.
이같이 벽화에 그치지 않고 꿈틀거리는 '마을 공동체 활성화 지역'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성진골엔 전국 각지의 공동체에서 찾는 선진지 견학단이 줄을 이었다. 갈 날(?)이 가까운 노인들이 사는 곳은 미래지향적 마을로 주목 받고 있다.


도시재생의 가치는 사람에 의한 공동체 복원
이같이 신세동 벽화마을은 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이 75세가 넘는 고령화 마을이었다. 주민 대부분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과 노령연금에 의지하고 적은 일당의 고된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곳이었다. 주민들도 떠나가기만 하고 그래서 마을 곳곳에 빈집이 흉물처럼 남아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새 물을 길어올린 젊은 작가들은 공방을 차리고 카페를 차리며 마을 주민으로 생활하면서 마을의 활력을 심어주고 있다. 신세동 성진골 주민들은 요즘 사는 게 즐겁다.
조민형 다누림협동조합이사가 운영하는 카페를 겸한 게스트하우스인 그림애컬쳐하우스는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동네 할머니들의 휴식문화까지 바꾸어 놓았다.
초기 활동가로 신세동벽화마을을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정윤정(다누림협동조합이사장) 그림애문화마을협의회 이사는 "그동안 이 동네 어르신들은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는 등 여가를 무의미하게 보냈다. 그래서 동네에 작가들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공예교육을 했더니 어르신들이 참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정윤정 이사는 또 경로당을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어르신들과 젊은 작가 등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자주 비빔밥을 해먹고 짜장면을 배달해먹고 대화도 나누는 사이가 되니 세대간은 물론 토박이 주민과 새로 들어온 주민간 이질감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만난 이계향(84) 어르신과 김금랑(76) 어르신은 "달동네라 집들이 다 토끼굴 같지만 대문없이 살 정도로 주민들이 서로 믿고 산다"며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이것, 저것 사업을 해서 동네가 좋아졌어. 옛날에 비하면 우리는 참 호강이지. 늙은이들하고도 잘 어울려"라고 하면서 활동가들을 추켜세웠다.
도시재생의 핵심 가치가 무엇보다도 사람이 중심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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