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갑(甲)은 없다
영원한 갑(甲)은 없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5.07 09:17
  • 호수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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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대상과 관계 사이에는 자연스레 갑과 을이 존재하거나 형성된다. 갑과 을은 절대적 지배의 위계질서가 아니라 상호보완과 가치상승을 위한 협력의 다른 이름이다. 문제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월한 지위나 권한 및 자본을 이용하여 자행되는 갑질이다. 갑질은 그 뿌리가 깊고 다양하며 우리가 사는 모든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
한 때 굴지의 재벌가 모녀들이 벌인 갑질의 향연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며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착취와 복종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갑질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더불어 그동안 사회 곳곳에 만연했던 갑들의 다양한 횡포 또한 속속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다.
갑질의 근원은 돈과 권력과 힘이 아니다. 갑의 위치에 있는 국가와 자본, 주어진 권력과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의 야만적 폭력성과 망상적 과시욕, 천박한 인간애와 무지의 세계관으로부터 갑질은 시작된다.
국가 간에 존재했던 갑과 을의 관계라면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여 정복하고 복속시키거나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다. 유사 이래로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많은 나라들이 있었지만 제국주의 정복국가의 영광을 오래 누리진 못했다.
유럽을 지배하며 찬란한 문화를 향유했던 로마제국도 그 영토의 크기만큼이나 많은 문제와 다양한 갈등을 야기하며 결국엔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말발굽으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차지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도 겨우 100여 년을 유지 했을 뿐이다. 20세기를 넘어 현재까지의 세계 질서 속에서 경찰국가 행세를 하며 절대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은 코로나 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사상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군사적 강성함과 자본의 절대 지배력이 커질수록 역사 속 멸망의 길을 걸었던 제국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전제군주시대 왕과 백성의 관계에서도 백성은 결코 을이 아니었다. 단지 을로 취급하며 군림하고 다스리려는 군주가 있었고, 그런 군주는 후세에 혹독한 역사적 평가를 받으며 오욕의 이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중국을 통일하며 영원불멸의 제국과 불로장생을 염원하던 진시황도 겨우 오십년을 못 넘기고 생을 마감 했으며, 그의 왕가도 3대, 20년을 이어가지 못했다. 자유민주주의 시대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도 5년이면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자치단체장들은 4년마다 선택을 받는다.
당선만 되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국회의원의 임기도 4년이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한을 위임받은 선출직들의 시간은 짧다. 문제는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벌이는 온갖 폭정과 부정과 비리의 갑질이다.
권좌의 시간이 길어지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눈과 귀가 멀어져 욕망과 야욕으로 군림했던 독재자의 말로는 모두 비참했다. 살아 영화를 누렸더라도 후세의 평가는 냉혹하고 야멸차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을 되새기며 위임받은 선출직의 사명을 깊이 새기고 본분을 다해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
자연에서도 갑을 관계는 존재한다. 현재 지구상의 절대 갑은 인간이다. 거대 공룡의 시대도 한 순간에 화석만 남기고 사라졌다. 우주에서도 하루에 수천, 수만 번의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의 이치는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고, 머무르는 곳에 머무르며, 흘러야 할 곳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파헤치고 가두며 파괴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도 인간의 원시적 야만성에 기인한 갑질에서 시작됐다.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다 죽은 어류의 뱃속에는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하고, 대안으로 생각하는 우주 공간마저 인류가 쏘아올린 인공위성과 로켓의 잔해가 넘쳐난다. 인간이 자연에게 행하는 갖은 횡포와 이기적 발상의 갑질은 시공을 초월하여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지구가 병들고 파괴되면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생성과 소멸과 진화를 반복하면서 이어져 나갈 뿐 우주만물 모든 것은 유한하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거만함과 오만함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세상의 이치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세상의 질서에도 절대가치의 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영원한 갑 또한 없다.
누구나, 언제든 갑에서 을로, 을에서 갑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경계하여 만연하는 갑질을 근절해야 한다.
어느 곳에서든 갑질 없는 공평하고 상생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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