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 없는 땅과 농민
[칼럼] 말 없는 땅과 농민
  • 송진선
  • 승인 2020.02.06 14:35
  • 호수 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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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땅하고 농민이다. 대만에서 만난 어느 젊은 농민의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말들만 펼쳐놓느라 너무 바쁘다. 그러나 정작 말못하는 것들의 심정을 아는가. 땅이 제 것을 요구하는가? 농민의 목소리 누가 듣기나 하는가? 결국 다 빼앗기고 밟히다가 피폐해져간다. 아무도 들어주지도 챙겨주지도 않는데도 다시 싹을 보듬고 쟁기를 쥐는 이런 바보가 없다.

그렇다고 영영 말못하고 죽는 것은 아니다. 참다참다 마지막으로 한번 소리를 내게되면 그때는 벼락이고 천둥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낮은 곳에서 말이 없다해서 땅과 농민을 욕되게 하고 너무 오래 참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
땅은 원래 한번 오염되고 유실되면 자연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땅은 물을 간직한 그릇이다. 땅속에는 항상 물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된다. 몇십년 전만 해도 하천엔 항상 물이 흐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어오지 않았던가?

지금 어느 하천인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가? 상류는 말랐고 하류는 썩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물도 땅이 줄만하니까 주고 있는 것이니 더욱 아끼고 고맙게 받아야 한다. 너도 나도 함부로 땅에 관박고 마구 물쓰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땅을 직접 오염시키는 것도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사람이 지은 모든 폐기물은 그동안 땅에 묻어왔다. 지구상의 어느 땅이든 땅은 하나다. 내땅 네땅이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썩지않는 폐기물을 만들지 않거나 또는 영구히 재사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농업과정에서 파생되는 오염도 과잉초과이다. 현대화된 농업은 농약과 질산염, 축분을 땅에 누적시킨다.

중국에서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극복하기 위해 생태문명전환을 국가제일과제로 선언하고 향촌진흥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도 농촌과 농업, 그리고 농민이 앞으로 살길은 생태농업으로의 전환이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농민의 원성이 하늘에 닿으면 위아래가 뒤집힌다고 했다.

혁명은 농민이 주도해왔고 산업은 농민의 희생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농민인구가 5퍼센트도 안된다고 우습게 보는데 농민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인류문명의 멸망임을 알아야 한다. 자연과 사회에 기반을 두지 못한 기술은 사람을 기계로 만들어버리고 갈수록 인간을 소외시켜갈 것이다. 농업을 우습게 알고 기술만 믿는다면 궤도없는 열차에 불과할 뿐이다. 재앙은 언제나 1%의 필연으로도 충분하다. 공장에서 아무리 요상한 것들을 지어낸다해도 땅과 농민이 없다면 영원히 추락할 수밖에 없다. 땅에서 농민이 지은 것이 아니면 제 입에 들어가는 것이 플라스틱과 미세먼지밖에 더 있겠는가? 밥 한 그릇 삼백원만 하자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경자년 새해는 남조선의 중심부에서부터 땅이 요동쳤다. 그러더니 지금 난데없는 전염병이 돌아 시국이 뒤숭숭해지고 선거철 맹꽁이 울음은 국운을 점칠 것이다. 그러나 시절은 예전같지 않을 것 같다. 봄같은 겨울날씨와 겨울같은 봄날씨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에 개구리가 깨고 입춘에 폭설이다. 하늘은 항상 무언가를 씌워놓은 것같이 잿빛이다. 일조량이 적고 날은 습하고 더우니 시설농가는 벌써부터 진딧물과 곰팡이에 고역이고 모종은 크지 않은 채 늙어간다.

예사롭지 않은 변화는 농가의 근심을 더하지만 앞서 심란한 이야기와는 달리 마음은 오히려 차분하다. 쪼그려 앉아 땅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보면 모든 일이 땅과 함께 시작했듯이 마무리도 땅과 함께 할 것임을 느끼게 된다.
재가 되어 바람에 떠돌고 바다에 닿는다 해도 종래에는 모두 땅에 가라앉을 운명이다. 몸도 마음도 사람은 땅에 속한 생물이다. 땅의 힘과 농민의 역량도 자각할수록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장구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가장 부드럽고 한편으로는 가장 편안할 수 있는 지위를 은밀히 간직한다.   

이제 꼭 해야한다며 힘껏 쥐어오고, 누린 것은 잃어버리지 않고자 한껏 당겨온 모든 것을 잠시라도 내려놓는 것도 참 좋겠다. 차라리 서로의 욕구를 이해해보고 나를 가만히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오는 것이다. 어느 시대보다 물질은 과잉되고 정신은 결핍이 되는 때이다.

이때에는 비로소 삼척동자도 계절을 아는 것처럼 보은사람이면 누구라도 땅의 품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지켜갈 수 있는, 그런 평화를 말하고 싶다. 보은사람 보은으로…. / 전경진(마로 한중, 한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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