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학혁명의 시작과 끝! 두려워 말라!
[칼럼] 동학혁명의 시작과 끝! 두려워 말라!
  • 편집부
  • 승인 2020.01.23 09:05
  • 호수 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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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이만동
조자용민문화연구회 대표, 도화리

1893년 3월 10일. 보은군 장안면 장내리에 전국에서 3만 여명의 동학 교도들이 모여들었다.
동학혁명의 시작이었다. 시작은 혹세무민,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억울하게 처형된 교주 수운 최제우의 원을 풀어주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궁극의 목표는 썩어빠진 양반들과 탐관오리들의 폭정에 대한 항거였다.
망해가는 당시 조선의 상황은 참담했다. 고종과 민비는 무능하고 탐욕스러웠다. 조정의 대신들과 민비의 측근들 역시 매관매직과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들은 나라의 앞날과 민중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이 오로지 사리사욕 채우기에 바빴다. 돈을 주고 관직을 산 지방 수령들은 상납한 돈을 뽑아내기 위해 농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괴이하고 억지스런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어 백성들을 괴롭혔다. 지방 수령들의 잔혹한 징세 명목들을 살펴보자.
1. 본인 혹은 본인 부모 공덕비 세운다고 돈 걷기
2. 환곡 빌려줄 때 쭉정이(먹지도 못할 곡식)로 한 말 빌려주고 받을 때는 멀쩡한 양질의 곡식으로 두 말 받기
3. 고리대금업(사또가 돈 빌려주고 높은 이자 받음)
4. 대동미(나라에 내야 하는 세금)를 중앙정부로 올려 보내야 하는데 중간에 조운선(곡식 싣고 가는 배) 파손 침몰 우려가 있다고 그만큼 더 받아놓고 착복하기
5. 군포라고 해서 군대 가는 대신 받는 포(손으로 짠 직물)를 죽은 사람에게도 부과(백골징포) 하고 아직 군역에 오르지 않은 어린아이 몫으로도 세금 징수
6. 세금을 견디다 못해 도망간 사람의 몫을 이웃집에 부과
7. 보관해놓은 쌀을 쥐가 갉아먹었다고 그 모자란 부분을 백성들에게 떠넘기기
8. 저수지 만들고 물세 받기, 미개간지 개척해 부쳐 먹으라고 한 뒤 개간해놓으면 세금부과
결국 1894년 1월, 학정의 상징이던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시달리던 고부 농민들이 전봉준을 필두로 봉기하고 동학혁명이 발화된다. 농민군은 세정을 비롯한 각종 폐정들의 개혁을 주장했다. 매관매직 방지와 탐관오리 엄징, 온갖 무명잡세 폐기, 지연과 혈연을 타파한 관리 채용, 왜구와 간통하는 자는 엄벌, 노비문서 폐기 등등.
그러나 조정의 왕과 대신들은 민심의 외침을 귀담아 듣기는커녕 강제 진압하거나 해산시켜버리고자 했다. 자신들의 무능함과 잘못을 깨닫고 민중과의 소통을 통해 개혁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시탐탐 침탈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과 청나라 등 외세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했다.
역사는 비슷한 모습을 반복한다.
조선 말기에 일본 등 외세의 도움을 얻어 자신들을 보신하고 사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다. 지금 역시 외세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도모하려는 자들이 상존한다. 일본이 조선을 개혁시키고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하고, 박정희 시절 일본의 원조로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대주의자들이 현재에도 여기저기 상존하는 것을 보면 역사는 반복한다. 더욱이 그들이 사회의 지도층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조선시대에 탐관오리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악랄한 방법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악행을 저지른 것이 그 시대의 폐해였다면, 지금은 국민이 애써 납부한 피 같은 세금을 소수의 기득권자와 이해관계자들만을 위해 쓰거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 국민을 배신하는 폐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0여 년 전, 이 나라의 민중들은 조정의 무능과 학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에 맞서 두려움을 떨치고 죽창을 들었다. 1894년 겨울, 보은 종곡리. 동학농민군들은 마지막 전투에서 일본군들에 의해 2,600여 명이 몰살당하고 만다. 최신식 스나이더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들에 의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맨주먹으로 굳건히 맞선 120여 년 전의 민중들. 보은은 동학혁명의 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3.1독립운동, 4.19혁명, 6.10 민주화 항쟁, 촛불 혁명으로 면면히 그 정신은 이어졌다. 그때의 함성은 이제 촛불이 되었고 그들에 의해 쟁취한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귀한 한 표로 표출되고 있다.
2020년, 보은.
다시 그 때의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군민을 무시하고 소통하지 않는 위정자는 군민이 심판을 해야 한다.
동학혁명의 시작과 끝인 보은군 군민들이여! 그들만큼의 용기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려워하지는 말자! 자신들의 떳떳한 주권 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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