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즐거운 학교
[칼럼] 즐거운 학교
  • 편집부
  • 승인 2020.01.16 10:38
  • 호수 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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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환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2005년부터 보은에서 근무를 했으니 꽤 오랜 기간이 지났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충북에 인연을 두었는데 이제는 충북이 고향 같습니다. 초임 때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교육과 무관한 업무에 지쳐서 교장선생님에게 찾아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학교를 꿈꾸고 있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언젠가부터 학교들이 너무 획일화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구호와 비슷한 건물, 비슷한 교육과정, 같은 교과서 속에서 학교들은 개성이라고 할 것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혹여 개성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영속성이 낮습니다. 사람이 바뀌면서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됩니다. 깊은 뿌리가 없으니 사람에 의해 흔들리는 구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적으로는 학교에 너무 많은 틀이 있습니다. 10평짜리 집에 온갖 가구를 다 배치해놓고 네 취향대로 꾸미라는데 실은 꾸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도리어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계속 오는 바람에 짐은 점점 쌓여가죠.
 집을 새로 꾸미려면 유산슬의 가사처럼 재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려면 비움과 자유 그리고 독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공립형 대안학교에서만 가능합니다. 혁신학교라는 제도가 있지만 이 또한 많은 틀에 갇혀 있습니다.
공립형 대안학교가 생기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학교의 철학부터 뿌리내리기를 원하는 교사들이 모여 텅 빈 공간을 아름답게 채워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 공간은 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공간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협동조합과 같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입니다.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은 민주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부터 학교의 철학, 교육방침, 교육과정 등을 같이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럴 때 이런 꿈들을 상상할 맛이 납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같은 철학을 추구하는 조합원으로서 만나는 학교. 주어진 교과서를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개발하는 학교. 교육과정을 수능의 초등버전이 아니라 인간의 발달과정 중심으로 짜는 학교. 학생자치가 살아있는 학교. 놀이터가 정말 재미있는 학교. 놀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을 적극 격려하고 따스하게 품으며 손과 몸의 솜씨를 기르는 학교. 매일 산책하는 학교. 고학년이 되면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떠나는 학교. 교실 밖에서 배움을 찾는 학교. 예술교과가 존중받는 학교. 스마트폰과 같이 해로운 매체로부터 아이들이 보호받고 잡무로부터 선생님들이 보호받는 학교. 승진 체계에서 떠난 학교. 관리자를 포함한 모든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를 하는 학교.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고 아이들이 급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며 먹거리의 원천인 자연을 스승으로 삼으려는 학교. 적어도 자신이 사용한 식판은 스스로 설거지 하는 학교. 농사 짓는 학교. 동물을 키우는 학교.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여 마을이 되어가는 학교. 부모와 교사가 함께 성장하는 학교. 부모들과 함께 주택을 건축해가는 학교.
한편으로는 대안학교라는 단어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합니다. 대안이라는 것은 또 다른 대안을 찾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기에 그냥 학교인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즐거운 상상들이 모인 좋은 학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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