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아침에
경자년 새해아침에
  • 편집부
  • 승인 2020.01.02 03:08
  • 호수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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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경진(마로 한중/한살림)

경자년이 펼쳐졌다.
우리는 여지껏 제사지내고 살아왔던 민족이다.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민족이 유지되면서 이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지켜온 것으로 우리에게 땅이 있으면 하늘도 있고 몸이 있으면 정신도 있었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
하늘과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여 인간세에 펼쳐놓은 것이 바로 달력이란 것이다.
올해 단기는 4353년이다.
우리말 음운기원을 보면 넷과 다섯은 '넣음(死)', '닫고섬(立)'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셋은 삶(生), 또는 섬(立)으로 읽혔다고 한다.

단기 4353년은 어쩐지 끝나고 일어서는 숫자들이란 느낌을 받는다.서양의 달력으로는 2020년이다. 인류사에서 2천년이상이나 달력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거의 없을 것이다. 서기 2020년에는 20이 두 개 들어있다.
모양만 보면 테이블마다 둘이 모이는 모습, 둘이 기도를 이루는 모습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올해는 천문학적으로 '경자년(庚子年)'이다. 살펴보면 경(庚)은 쇠금의 기운이 강하고 금은 만물의 결실을 상징한다. 자(子)는 쥐의 해이며 물기운 또한 매우 강하다. 쇠와 물, 둘 다 차가운 성질이다.
오행상 금은 수를 돕는 기운이라서 내년의 신축년도 축축한 진흙이 되어있을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올해 생각지도 않은 물길들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물길이라고 하면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물길일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오히려 쉬엄쉬엄 앉아 몸과 맘을 풀고 갈수도 있고 때로는 멀리 돌아가면서 다른 경험을 해보고 걸을 수도 있다.
조급함과 욕심만 내려놓으면 험한 물길도 편안하게 비춰질 것이다. 그렇다고 물결이 장애물만 되는 것은 아니고 물길만 잘타면 어쩌면 목적지까지 나를 편안하게 데려다주는 경우도 있을수 있다.
물은 변화가 많다. 그래서 흐름을 타는 것은 사람의 몫인 것이다. 올해 우리 마음은 경(庚)의 쇳덩이같이 철갑선같은 굳건한 마음을 지니고, 경(庚)의 열매처럼 성숙하게 무르익은 지혜를 간직해야 한다. 그러면서 올해는 왠지 다함께 세파를 헤쳐가자고 함께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만 같다.
시험을 치르더라도 쉽고 재미있어서 배우려는 사람들로 가득 모일 것 같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유유상종 모여서 즐거운 소통과 회식을 함께 할 것 같은 기대가 일어난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우울했던 휘장을 걷고 문을 연다.
해가 바뀌면서 사람마음이 또 한철 따라 바뀌며 물들어가는 모양은 마치 농사의 변화를 보는 것만 같다. 고단했던 전년의 파란과 우환과 아픔들을 쇠칼로 썩썩 썰어서 크고 강한 물살에 쉬이 떠나보낸다. 경자년 물살이 도와줄 것이다. 다만 사람이 사람하고 잘 어울리게만 해달라고 빈다. 어떤 운이든 인화(人和)가 제일이다.
없이 살아도 참 인정 고왔다는 말이 옛일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 집에 찾아가 같이 밥먹고 덕담해주면 된다. 옛사람들은 손님을 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믿었다.
더구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지평을 넓히는 일은 그 자체로도 서로에게 지혜를 준다. 쥐는 참으로 야무진 동물이다. 농가에는 어떤 짐승보다 이놈을 이기기 어렵다. 이놈들은 뜻에 맞는 동지들과 짝짜꿍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서로 소통을 잘하는 짐승이다.
사람도 쥐처럼 뭉치고 쥐처럼 나누자. 거기다 좀 더 선하고 바르고 꾸준하게만 일을 펼쳐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가난한 자는 뭉치고 부유한 자는 나눈다. 거기에 모두의 복이 모인다.
나는 요즘에 귀농인이거나 외지인이라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보은에서 얼마나 뿌리내리고 살려는 자세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토박이라고 하면서 후손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돈걱정만 하는 사람은 이미 뿌리가 약한 사람이다. 외지인이라지만 향토와 자연을 사랑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은 뽕나무처럼 뿌리를 튼튼히 내린 내지인이다.
경자년에는 보은사람들 모두 쥐처럼 야무지게 쇠처럼 단단하게 물처럼 유순하게 다함께 세월을 겪으며 복을 지었으면 좋겠다. 모든 보은사람들, 서로 만나서 덕을 베풀고 태평을 기원하는 것으로 오늘을 시작했으면 한다. 우리 마을의 나무와 돌과 산에게도 이왕이면 같은 보은사람에게처럼 덕을 베풀고 태평의 기원을 더해주면 더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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