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공사판(吏判事判工事판)!
이판사판 공사판(吏判事判工事판)!
  • 편집부
  • 승인 2019.12.12 02:04
  • 호수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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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오황균
청주충북환경연합 상임대표 /내북면 법주리

어려운 말로 '이판사판 공사판(吏判事判 供辭判)'이라는 말이 있다.
'이판(吏判)'이라 함은 절에서 경론연구와 참선수행을 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이고, '사판(事判)'이라 함은 절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 좀 더 들어가면 절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해 여럿이서 모여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일을 '대중공사(大衆供辭)'라 하는데 이를 줄여 '공사(供辭)'라 한다.
'이판'과 '사판' 스님들이 모여 '대중공사'를 하면 '이판사판공사판(吏判事判 供辭判)'이 되니 이를 줄여 '이판사판(吏判事判)'이라 하고, 이는 절체절명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즉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자는 '에라! 이제 죽으나 사나 이판사판이여!'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나는 올해 들어와 우연치 않게 충청북도정책자문단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환경산림분과'에 소속되어 2019년 마지막 회의에 참석해 보니 2019년 시행 사업부터 2021년 신규 사업까지 소관 사업들을 보고 받는 기회가 있었다.
여러 보고 사업 가운데 정신이 확 드는 사업이 눈에 띄었다. 바로 얼마 전에 지역 신문에 보도가 되었지만 눈 여겨 보지 않았던, 2020년 신규 사업에 포함된 '보은 용암리 쓰레기 매립시설 60,000㎥ 증설 사업'이다. 총 62억이 들어가는 이 공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시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어 아직 착수되지 않은 사업이다.
타 시 군에는 야생동물재활시설 설치사업이다. 자연휴양림 조성이다, 임산물클러스터 조성이다 등등 좋은 사업을 많이 배정했는데, 보은은 한남금북정맥 줄기에 고압 송전탑 설치도 모자라 쓰레기 매립장 증설이라니! 보은이 그리도 만만하단 말인가?
그나저나 이 중요한 대목을 놓치고 유유자적하다니! 자책감도 잠시 '앞으로 이를 어째야 하나'하는 생각에 나 자신 머리가 무거워지고 뒷골이 당겼다.
그래! 불참을 통보했던 12월 4일 남부 3군 현장 방문에 꼭 참가해야겠구나! 가서 봐야하지 않나.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옥천은 향수길 조성사업과 전통문화체험관 조성사업, 장계관광지 리뉴얼 사업 등 추진에 겨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겨울공사는 부실을 낳을 것이 뻔한데 무엇이 급해서 저리도 서두른단 말인가. 불용예산은 반납을 해야 하니 '이판사판'다 써버릴 요량인가. 그러한 의구심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영동은 2012년부터 착수하여 2018년 개장한 '와인터널'개발사업을 중점 홍보했다. 아직은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포도 재배 농가마다 와인을 생산하고 그것을 홍보 판매하는 영동군의 농촌 기반 성장 아이템은 그런대로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고장 보은군의 현장 방문이 있었다. 부군수님까지 출동하셔서 성의가 매우 돋보이는 바였으나, 예상을 초월하는 '이판사판 공사판' 그 자체였다. '吏判事判 供辭判'이 아니고, '이판사판 공사판(工事판)' 말이다.
무엇이 그리 다급한지 공사장은 여럿이 모여 논의하고 결정하는 '供辭判'이 아니고 '공사판(工事판)' 즉,'공사현장(工事現場)' 이었다.
스포츠파크는 군민이 알다시피 국제규격 육상경기장, 야구장 2개, 축구장, 그라운드골프장, 체육회관, 야구실내연습장, 실내씨름장, 부대시설 등은 이미 2017년에 완공되었고, 추가 추진 중인 사업은 79억짜리 다목적체육관, 189억짜리 다목적 종합운동장이라고 보고됐다.
우리는 36억짜리 농경문화관을 거쳐, 62억짜리 말티재 관문을 올라, 26억 들어간 꼬부랑길을 곁눈질하며, 193억이 들어간 속리산 숲 체험마을을 돌아보았고, 15억이 들어간 전천후사계절훈련장을 거쳐, 지금은 낡아서 손님도 별로 없는 83억짜리 스카이바이크를 지나, 27억 들어간 짚라인을 스쳐지나, 내년 3월에 준공될 88억 짜리 모노레일 공사장을 견학하였다.
아! '이판사판 공사판(吏判事判工事판)!' 보은은 목하 공사(工事)중이다.
전북 익산의 장점 마을에서 무서운 폐암을 유발시킨 담뱃잎 찌꺼기인 연초박이 이 고장 보은땅 수한면 질신리에 위치한 S영농조합 법인에 대량 반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보은군 공무원들은 아니, 보은 군수님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참담함을 금치 못하겠다.
그 엄청난 공사판은 군민들의 의견이나 제대로 수렴하고 시행하는 것인지, 군민들의 근심걱정을 덜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이 그리도 어려운 것인지 정녕 묻고 싶다. 무시당하고 짓밟힌 민심이 들고 일어나고 난 뒤라야 제 정신을 차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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