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북실서당 강좌 성료
제2회 북실서당 강좌 성료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11.28 17:24
  • 호수 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회 북실서당이 재경 북실청년회(회장 김홍석) 주관으로 지난 11월 24일 북실김씨 집성촌인 종곡리 체험관에서 개최됐다.
강좌는 보은읍 강신리 새마을 동네 출신인 김홍석 박사의 '충암과 동학 윷판이 만나다'와 문학박사인 국사편찬위원회 김우철 편사부장이 해석한 '회와 김민태 선생의 생애와 회와집 주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보은군향토문화연구회 최규인 회장도 참석해 강사들의 열강을 들으며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고 연구를 한 강사들의 실력에 박수를 보냈다.
먼저 강의를 한 김홍석 박사는 "소라리는 충암 김정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순창군수로 하던 중 26, 7살 젊은 나이에 불의를 거절하고 도학정치와 실사구시를 펼쳤던 곳이고 또 경주 최씨 최재우가 은둔해 하늘을 모시는 시천주를 정립한 곳으로 보국안민의 씨앗을 뿌린 곳이지만 일본군에게 2천600여명의 동학농민군이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며 "하늘의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모습이 그대로 종곡 북실마을에 펼쳐져 있다"며 "술잔 종의 종곡이 쇠북종이 울려 퍼질 새로운 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회와 김민태 선생의 회화집을 번역한 국사편찬위원회 김우철 박사는 김민태 선생은 회와집은 총 3편으로 구성됐으며 1편은 시, 운문으로 구성되고 2편은 문장, 산문, 편지 등으로 돼 있으며 3편은 대곡선생의 글방이었던 모현암 중건할 때 지은 상량문 등 일반문장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 부록도 엮고 있다고 덧붙였다.
판도판서공의 17세손인 김민태 선생의 문집인 회와집은 본래 원문을 종가에서 보관해오다 20세기에 분실했지만 전 동광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김홍원 선생이 필사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북실인 김현모씨의 지인이 김민태 박사에게 의뢰해 풀이한한 것이다.
회와 선생은 생전에 장남 김수형이 요절하고 맏손자마저도 일찍 사망하는 불운을 겪지만 효성이 지극해 부모님을 잘 모시고 또 유학에 경진해 학식과 인품을 두루 갖춘 선비였음을 회와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와집은 김민태 선생의 쓴 글 등을 차남인 김수용씨가 책으로 엮은 것이다. 물리학에 뛰어났던 회와 김민태 선생은 효성이 지극해 한겨울에 목욕재개하고 북극성에 향해 아버님의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비는 내용의 축문도 있고, 스승 박정양 선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운을 넣어 문장을 논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또 병인양요를 분개하는 내용의 시를 지은 것도 있고 유학자 한유의 형상을 거꾸로 매달아 치욕을 보인 사건이 있었는데 유림이었던 회와 선생이 분개하며 글을 짓고 통문을 보냈던 내용도 담겨 있다.
식년시를 통해 벼슬길에 오르기도 하지만 향리의 천거를 받아 조정에서 뽑아 벼슬을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히와 선생은 3번의 천거를 받았으나 중앙정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직접 벼슬을 얻지는 않았으나 향촌 보은에서 세번이나 천거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학자로 평가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병자년에는 일본이 강제 개항하고 통상을 강화하자 이를 반대하는 모임을 조직해 척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으며 장남에 이어 장손마저도 요절하자 상여 나갈 때 들고가는 만장에 애도의 마음을 담아 직접 작성했던 만사도 회와집에 남아있다.
또 마을엔 지방자치단체의 향인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규약인 향약이 있었으나 이 고을엔 종약이 있었고 김민태 선생이 당시 마을의 중심인물이었다고 김우철 박사는 밝혔다.
한편 북실서당은 지난해 6월 1회 강좌를 개설 한 후 올해 2회째 개설한 것이다. 강좌를 준비한 김현모(전 보은사랑 76회 회장)씨는 "조상의 전통을 이어가고 미래 후손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조상의 근본과 지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전당으로 서당이 역할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