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강물처럼
세월은 강물처럼
  • 편집부
  • 승인 2019.11.14 09:04
  • 호수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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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오 황 균 청주충북환경연합 상임대표 /내북면 법주리

가을이 깊었다. 입동이 지난 지 며칠 되었으니 초겨울의 문턱이라 해야 옳다.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던 봄이 엊그제인데 화살같이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실감난다.
가을이 지난 들녘은 텅 비어 있다.  아직 거두어들이지 못해 드문드문 밭두렁에 놓인 서리태콩을 제외하면 김장할 배추와 무, 그리고 갓이나 쪽파 등만이 들녘을 지키고 있다. 머잖아 채소들을 거두어들이고 나면 비로소 들판은 텅 비게 되고, 다시 내년 봄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분주하던 젊은 시절은 저 멀리 가고, 어느새 가슴 텅 빈 노년이 눈앞에 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칭얼대던 자식들도 아늑한 부모의 품을 떠나 각자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져 가 버렸다. 키울 때는 뒤치다꺼리에 힘겨웠지만 모두 떠나고 나니 몹시 허전하다. 예로부터 허무한 것이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봄을 기약하는 자연과는 달리 인생은 가고 나면 후세의 평가만이 기다릴 뿐이다.
어찌 평범한 인간의 삶만이 허무할 손가.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 공무원들의 운명은 더 기구하다.  출사표를 던지고 나서 천신만고 끝에 당선이 되면 세상이 다 내 것 인양 득의만만하다. 그것도 잠시 자리가 자리인지라 일을 좀 익히려고 두리번거리다 보면 임기의 반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 때 쯤 되면 나이 탓에 힘도 빠지고, 레임덕이다 뭐다 해서 아래 것들이 도통 말을 들어먹질 않는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 짜내서 뭔가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동분서주 하다보면 임기가 다 지나가 버린다. 재선의 희망이 있는 경우는 그래도 좀 덜할 것 같다. 초임 때 갈고 닦은 경험을 바탕으로 재선 후에 숙원 사업들을 힘차게 밀어 붙이고 나서 3선에 출마하여 유권자의 심판을 기다리면 된다. 잘하느니 못하느니 해도 두 번의 임기 동안 베풀어준 공덕이 있다. 누구도 무시 못 할 위치에 가 있는 것이다. 허나 세 번째 임기를 맞이하게 되면 단체장의 처지는 달라진다. 이번이 마지막 임기다.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옆에 가기를 몹시 꺼릴 뿐 아니라, 이제 갈 사람이거니 하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십년 하고도 2년 더 임기를 채운 터수에 평범하게 임기를 채울 수는 없다. 후세 국민들이 평가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별거 아닌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종종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래서 말년이 조심스러운 것이 아닐지. 군대 내에서는 "제대 말년이면 떨어지는 낙엽조차도 조심하라"는 속설이 있다. 번지르르한 치적보다는 차라리 기본에 충실함이 더 나을지 모른다.
우리 보은군의 단체장도 이제 제대말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유례가 없이 3선에 성공한 이후에 여러 가지로 입줄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급기야 친일망언의 자충수까지 두고 말았다.
임기 동안의 업적에 조급해지고 강박에 시달리는 3선 말기 상황이라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대체 왜 저러시나?"하는 의구심은 더 커져만 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의혹들에 보은군민은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다. 이쯤 되면 이미 문제가 된 성족리 식생 블럭은 조족지혈이다. 이 좁은 바닥에서 소문은 금방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간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군민들이 앞 다투어 비리 의혹을 폭로 한다. 주로 특혜시비거리가 될 만한 것들이지만 한 쪽 이야기만을 가지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그 중에는 누가 보아도 특혜를 의심할 만한 사안도 적지 않다. 저번에 보은읍 봉평리 소재 모 단체장의 대추밭에 식생 블럭을 특혜 시공했다는 의혹이 일더니, 이번에는 마로면 적암리에서 퇴직공무원이 개인소유 땅을 찾는 과정에 군이 나서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로를 신설하려는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설명회까지 열었다가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는 소식이다.
특혜인지 아닌지 진위여부가 궁금하지만 보도 이후에 반박 한 마디 없는 것으로 보아 특혜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인생을 헛되게 산 사람이 아니라고들 한다. 단체장으로서 국민의 상머슴으로 일하다 떠나는 사람이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본다. 칭송을 듣기보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떠날 때 자신의 뒷모습을 잠시라도 생각해 본다면, 그의 행보는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지리라고 믿는다. 깨끗하게 비우고 난 가을들판이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것처럼, 퇴임 후에 찾아올 인생의 3막을 그려보고 준비하는 자의 뒷모습은 진정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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