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인문학 바람을 일으켜보자
농촌에 인문학 바람을 일으켜보자
  • 편집부
  • 승인 2019.11.07 09:45
  • 호수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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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경진 마로 한중/한살림

우리가 어릴 적에는 사춘기가 되면 소위 개똥철학이란 걸 했다. 우스갯소리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인생이 무엇인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왜 사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자문했다. 당시 나의 고민은 알 수 없는 세상의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제대로 된 삶에 대한 물음표를 담고 있었다. 냉혹한 현실에 대해 막연한 저항감을 가졌던 청소년기가 생각난다.
그러다 한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배부른 생각이다. 한가한 소리다.' 이런 비웃음과 자괴감속에 나의 질문들은 흐려지고 옅어져버렸다.
그런데 요즘 살면서 자꾸 개똥처럼 굴러다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최근 우리를 둘러싼 것들과 우리의 내면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철학의 부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철학은 인문학이 내재된 근본학문이다. 수학과도 맞닿아 있으며 모든 지식의 근간이다. 지금 우리의 모든 문제는 '모르는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특히 농촌사회에 인문학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는 것이 막히거나 어려울 때, 설령 잘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만족감 없이 공허할 때, 한번이라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 때, 우리는 그것을 다루기 위한 방법으로 외적인 노력과 함께 내적인 성찰도 필요로 하게 된다. 자신만 너무 몰라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밖을 향해서 정신없이 살아왔다. 더구나 외적 노력만으로는 이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벽에 닿을 것이다. 세상자체가 이미 막막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농촌사회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애환보다 더 힘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모든 농촌지역의 문제가 외면받고 소외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농촌사회는 갈수록 고립되고 경직되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들어온 귀농자들이 있다. 보통 도시에서의 삶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귀농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삶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들은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을 훈련하고 또 연습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버는 이유도 삶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함이지 단순히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가치를 품은 농업에는 생계형으로만 농업을 접근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산물의 생산과정 전반에 걸쳐서 질을 높이고자하고 더 나은 가치에 있어서의 정신적 빈곤을 극복하고자 한다. 과정과 목적이 포괄적이다.
자신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좋은 가치를 농업에 담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면 땅의 회복과 생태계 순환을 기반으로 하는 건강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인권, 교육, 복지, 문화, 환경 등 모든 측면도 자신의 삶과 농업현장이 깊이 연결되어있다는 걸 인식한다.
농촌에서의 삶이 힘든 것은 농업경제가 열악하다는 것 외에도 농촌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측면에서의 문제도 상존한다는 의미이다. 소통에서 절망하고 사회구조에서 좌절하고 인식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서로 단절되어 간다.
따라서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배워야 한다고생각한다. 무엇보다 인문학을 공부했으면 한다. 인문학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측면을 집약한 정신적 학문체계이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자기가 정리해보고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해보고 네 사람이 서로 토론해본다. 이렇듯 집단토론을 통해 집단지성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제대로 된 조직을 꾸려나갈 수 있는 지성을 갖출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지 않고, 근본철학과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사회에서 물질적 지원만을 투여한다면 이를 감당하지 못해 오히려 폐단만 양산할 것이다. 많은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나는 모든 물질적 빈곤의 원인이 결국 정신적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농촌에 먼저 인문학과 철학을 풍부히 나눌 수 있는 교육 기회가 제공되길 바란다. 인문학 교육이 제공되고 이를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으면 한다.
그럼으로써 보편타당하고 상식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자신의 소양과 인격을 도야(陶冶)할 수 있는 농촌철학의 시대가 펼쳐졌으면 한다.
또한 인문학을 통해서 세대와 지역을 폭넓게 인식하는 바른 정보가 형성될 것이다. 결과와 원인에 대한 바른 정보는 과정 전체를 이해하는 것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보다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이 '과정'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우리의 삶은 과정 그 자체이지 원인과 결과가 아니다. 과정에 담겨있는 지향과 가치를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백년의 번영을 함께 꿈꾸게 할 것이다. 철학이 개똥처럼 굴러다니는 시대, 정신이 풍요로운 사회, 개똥철학의 농촌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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